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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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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롯 거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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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한 교리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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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씀으로서 주님을 나타내고 그러므로 말씀에서 비롯한 교회의 교리를 뜻하며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들을 인자라고 부르는 것은 주님에 관한 교리 28에서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선지자들이 많은 일들로 고통 받고 그것을 참는 것은 유대인들이 말씀의 글자의 뜻을 왜곡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발에서 신을 벗고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사야 20:2-3)

그리고 또, 선지자 에스겔은 삭도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며 터럭 중에서 조금은 옷자락에 싸고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는 불에 던져 사르라고 명령 받았다 (에스겔 5:1-4)

[2] 앞에서 말한 대로 선지자는 말씀을 뜻하며 따라서 말씀에서 비롯한 교회의 교리를 뜻한다. 그리고 머리는 말씀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하며 그러므로 머리털과 수염은 궁극적인 진리를 뜻한다. 이런 의미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대머리가 되는 것과 대머리로 보이는 것은 깊은 슬픔과 큰 치욕의 표시였다. 선지자가 자기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그것으로 말씀에 대한 유대교회의 상태를 나타낸 것은 다름아닌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조롱한 사십이 명의 아이들을 암곰 둘이 찢은 것 (열왕기하 2:23-24)도 다름 아닌 그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선지자는 말씀을 나타내며 대머리는 궁극의 의미가 없는 말씀을 뜻하기 때문이다.

[3] “나실인”이 궁극의 말씀이신 주님을 뜻하며 그러므로 그들이 머리를 기르고 그것을 조금도 잘라선 안 되는 것이 규례였다는 것은 다음 장에서(49) 말할 것이다. 더구나 히브리 말로 “나실인”은 머리 털을 뜻했다.

대제사장이 그의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은 규례였다. (레위기 21:10)

가족들의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레위기 21:5)

[4] 이것 때문에 대머리는 그들에게 큰 치욕이었다. 그것은 다음 구절들에서 분명하다.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이사야 15:2; 예레미야서 48:37)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에스겔 7:18)

모든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모든 어깨가 벗어졌으나 (에스겔 29:18)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아모스서 8:10)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미가 1:16)

여기서 대머리가 되게 하고 머리가 크게 벗어지는 것은 말씀의 진리를 그 궁극에서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행한 것처럼). 왜냐하면 이것이 거짓으로 바뀔 때 말씀 전체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의 궁극은 그 기둥이며 받침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각 말씀은 그 천적, 영적 진리에 대한 기둥이며 받침대이다. 머리털은 궁극에 있어 진리를 뜻하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말씀을 경멸하거나 글자의 뜻을 거짓으로 바꾸는 사람은 모두 대머리로 보인다. 반면에 말씀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머리털이 있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에서(49)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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