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a

 

자유 또는 자유 의지

Ni Julian Duckworth, Joe David (isinalin ng machine sa 한국어)

by Caleb Kerr

자유가 핵심입니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 매일매일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이러한 수준의 자유는 적어도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는 매우 새로운 것입니다. 이는 '진화 플러스'라고 부르는 지구상의 생명체가 걸어온 길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고고학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에 따르면 약 8만 년 전부터 인간에게 영적 인식이 발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윈의 대답은 영적 인식이 발달한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진보"였습니다.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영적인 '차원'에서 물리적 세계로 신의 계획과 영향력의 일부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인식이 생기면 옳고 그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사람들은 새로운 차원의 선택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하나의 특성입니다. 동물은 이러한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선과 악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유롭게 선택한 사랑만이 개인에게 (또는 개인에게) 전유될 수 있기 때문에 악을 허용하는 한도까지 이러한 의지의 자유를 보호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보시기에 옳다고 믿는 일을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사랑의 형상으로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 형상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어떤 동물도 그런 선택권이 없습니다.

주님은 항상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고대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아담과 이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을지 말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자유를 유용한 방식으로 행사할 수 있으려면 자유와 이성, 즉 이해하고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물리적 세계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좋은 음식일까요? 좋은 물은 어디에 있나요? 겨울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이 위험한가요?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우리의 이성은 영적인 것에도 확장되어 영적인 자유를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진리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구전 전통과 가장 오래된 문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어떤 종류의 영적 계시를 받아왔으며, '기독교 세계'에서는 모세, 선지자, 복음서의 말씀, 즉 우리가 현재 성경이라고 부르는 말씀으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 교회를 위한 기록은 주님의 계시의 연속입니다.

"자유"와 관련된 개념은 "자유 의지"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존재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지옥을 극복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고, 우리의 자유의지는 항상 유지되며 우리가 사용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두개골을 뒤로 젖히고 뇌에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는 스위치를 던질 수는 없지만 주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하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미 그렇게 하신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그분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분께 보여줍니다. 우리가 아직 느끼지 못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강요한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조금 변화시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강요했을지 모르지만 자유의지란 스스로를 강요할 수 있는 자유, 즉 우리의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잠시 노력해도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해서 낙담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평생의 프로젝트입니다. In 출애굽기 23:28-30, 주님은 그 땅의 적들을 "조금씩" 몰아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자연계에 사는 동안 주님은 우리를 천국과 지옥의 영향 사이에서 평형 상태를 유지하여 우리의 의지가 우리를 어느 한쪽으로 조금씩 움직일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유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천국에 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지만, 그렇게 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 모두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있습니다.

(Mga Sanggunian: 천국의 신비9591; 주님의 신성한 섭리43; 참된 기독교475, 483, 498,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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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 43

Pag-aralan ang Sipi na 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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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지옥적인 자유가 있는가 하면 천국적인 자유도 있다.

시민적 및 도덕적 법률이 가로막지만 아니하면 악을 생각하고 뜻하며 또 이것을 말하고 행하는 것은 지옥적인 자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면 선을 생각하고 뜻하며 또 말하고 행하는 것은 천국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자유로 생각하고, 뜻하고, 말하고, 또 행하는 것은 그에게는 그의 것같이 보인다. 모든 사람의 자유는 전적으로 그의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적인 자유가 곧 자유 자체라는 것밖에는 다른 지각이 없고,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천국의 자유가 곧 자유 자체라 지각한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에게와 악한 사람에게는 그 반대되는 것이 예속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고백해야 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 자유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체에 있어서 정반대되는 두 종류의 자유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은 고백해야 한다. 선에 의해서 나아가는 것은 자유이나, 악에 의해서 나아가는 것은 예속이라는 것이다.

선으로 나아가는 것은 주의 인도하심을 입는 것이요, 악에 의해서 나아가는 것은 악마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자유로부터 행할 것은 무엇이나 그에게는 그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사랑에 속하며 또 그의 사랑으로부터 행한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유로부터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에게는 자유롭게 보이며 따라서 그의 것같이 보이게 하는 것은 주와 더불은 결합인 것과 주님과 더불은 결합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는 더욱 자유롭게 보이며, 그러므로 더욱 그의 것같이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자신에게는 더욱 뚜렷하게 그 자신같이 보이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것을 남의 것같이, 그러므로 사람의 것이나 천사의 것같이 보이게 하는 본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영적 사랑은 이와 같이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더욱이 주는 어떠한 경우에도 누구를 강요하시지 않는다. 강요당해서 된 것은 그의 것같이 보이지 아니하며, 그의 것같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사랑에 속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의 것같이 그의 소관 (所管)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는 사람을 늘 자유 안에서 인도하시고 자유 안에서 다시 나고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가서 더 말할 것이요 더러는 위 (4)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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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서울시 은평구 은평로 21길 31-12 (녹번동 75-21) 서울새교회 주문 : 02-389-1366 (교회) , 010-3687-1050 (양규대) 서적담당 : 010-5755-8765 (김승길) 인터넷 : www.new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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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독교 # 498

Pag-aralan ang Sipi na 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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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 이 모든 것에 의해서 다음의 것이 결론된다. 즉 영적인 면들에 있어서 자유의지 그 자체는 사람의 혼 (soul) 안에 매우 완전하게 거주하며, 이로써 수맥이 열리고 물이 샘 속으로 스며드는 것같이, 그의 마음 즉 의지와 이해성 안으로 유입되며, 의지와 이해성을 통해서 육체의 감각들 속으로 흘러들어 가서 언어와 행동 속으로 흘러든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는 생명의 세 가지 등차 즉, 혼•마음•감각적 육체가 있으며 보다 높은 등차 안에 있는 것은보다 낮은 등차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완전한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자유를 통해, 자유 안에, 그리고 자유와 함께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들이 줄곧 받아들여지기를 심히 원하시면서도, 이 자유를 제쳐 놓으시든가 제거하시지 않으신다. 그것은 상술한 바와 같이 영적 자유로 행해진 것만이 영원하며, 그래서 이것은 주님께서 그의 혼 안에서 그와 함께 거처하시는 사람의 자유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계나 자연계에서 악을 범하는 것을 법률로써 제한한다는 것은 사회가 계속 존속되기 위해서라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 없다. 외적인 제약 없이는 사회뿐 아니라 전 인류가 파멸할 것이라는 것을 예를 들 수 있다. 사람은 두 가지 욕망, 즉 지배욕 (支配欲•the love of ruling)과 소유욕 (the love of possessing the wealth)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욕망 (慾望)은 제어되지 않으면, 그 한계를 모르고 뻗어나갈 것이다.

이 것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유전악 (遺傳惡•hereditary evil)의 주된 근원이며, 그것이 아담이 그의 악한 욕망 즉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그 악을 뱀에 의해서 그에게 주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저주가 선포되었는데 이르기를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다." (창세기 3:5, 18)라고 그들에 의해서 모든 악과 거짓이 있음을 의미하였다.

지배욕과 소유욕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들은 자신들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그들은 연민의 정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웃 사랑이 없고, 무자비하고 난폭하며, 잔인하고 지옥적 탐욕속에 있다. 그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한 일에는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써서 남의 것을 강탈한다. 이러한 속성들은 땅의 짐승들도 없는 속성들이다. 그들은 기갈을 면하고 위험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할 때가 아니고는 서로 죽이거나 잡아먹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악한 사람은 어느 짐승들보다도 더 비인간적이고, 흉악하고 야비하다. 이러한 사람들의 내적인 상태는 법률의 속박이 느슨한 곳에선 폭동으로 나타나며, 주어진 자유가 정복하고 포위하려는 분노로 바꿔질 땐, 대학살과 약탈이 일어나며, 중지하라는 명령이 있기까지는 누구도 그들의 악을 멈추지 못한다. 이로써 법적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통제되지 않으면, 사회뿐 아니라 온 인류가 파멸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모든 악들은 사후생명의 상태에 관한 진지한 생각에 직접 영향을 주는 영적인 것들 안에서 자유의지를 참되게 사용하지 않고서는 제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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