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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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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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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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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이 삼층 천에 올라간 것과 그의 눈이 떠서 교리로서의 주의 새교회가 성 모양으로 그 앞에 보인 것을 뜻한다.

"그가 영으로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요한이 주께 대한 사랑 안에 있으며, 주로부터 나온 진리의 순수 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삼층 천에 올라간 것을 뜻하며 큰 것은 사랑의 선에, 높은 것은 진리의 선에 속한다. 왜 "높은 산으로 데려간 것"이 삼층 천에 올라간 것을 뜻하는가 하면 "성령으로"라 말하였기 때문이요, 마음도 시각도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영계에 있는 것이며, 영계에서 삼층천 천사들은 산에서 살고, 제이 천국 천사들은 작은 산에서 살며, 제일 얕은 천국 천사들은 작은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에서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이 성령으로 산에 올라갔다면 그는 삼층 천에 올라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심정 상태의 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게 보이니"는 그의 눈이 열린 것과 밝히 드러난 것(表明)을 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 성 거룩한 예루살렘"은 위(878, 880)에서와 같이 주의 새교회를 뜻한다. 거기서도 이것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거룩하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이 성(城, 都市)모양으로 보인 것은 "성"은 교리를 뜻하며(194, 712), 또 교회는 교리와 그에 의한 생활로부터 교회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그 모든 특질을 기록할 수 있도록 성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 성은 성곽과 문과 기초와 여러 측량으로 쓰여 있다. 에스겔서의 교회도 같은 식으로 쓰여 있다. 예언자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을 보았더라. 천사가 담과 문과 넓이와 높이를 재더라"(에스겔 40:2)

스가랴서의 이 구절도 같은 것을 뜻한다.

"내가 천사에게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넓이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스가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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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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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그 교회가 처음 세워진 때부터 기독교도들로 이루어진 그 외적 교회 역시, 주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그때 올라와 구원을 얻고 난 다음에는 없어진 것을 뜻한다.

"바다"는 교회에 관한 것을 영적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연적으로 생각한 그 하늘과 그 교회의 외적인 것을 뜻하며, 이러한 사람들이 있는 그 하늘을 외적인 하늘이라 하며 (238, 239, 403, 404, 420, 466, 470, 659, 661을 보시기 바란다). 여기서 "바다"는 그 교회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기독교도로 이루어진 외적 천국을 뜻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내적 천국은 최후 심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이에 대하여 제 1415에서 그리고 20:4-5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주께서 이렇다하게 이루지 않으셨던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보시기 바란다. 왜 내적 천국을 먼저 완성하시지 아니하셨는가하면 용과 그 두 짐승들이 영계에서 판을 치고, 할 수 있는데 까지 모든 사람을 꾀는 정욕으로 불타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되도록 빨리 천국으로 모이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용신봉자(龍信奉者)들로부터 선한 사람을 분리시키고 용신봉자들을 저주하고 마지막으로는 그들을 지옥으로 던지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 다루었으며, 마지막으로는 19:2020:10에 다루었으며, 이 일 후에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었다"(20:13)라 말하였고 이것은 외적이며 자연적 교인들이 심판받도록 호출되고(869를 보시기 바란다) 그다음에는 주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분리되고 구원 얻는 것을 뜻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같은 항목을 보시기 바란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바다"이다. 기독교의 새 하늘이 다루어져 있는 또 다른 곳에도 "불이 섞인 유리 바다"까지 이것이 뻗어 있었다(15:2) 말하였고, 여기 "바다"역시 기독교도의 외적 천국을 뜻한 것은 659, 661의 설명을 보시기 바란다. 이상으로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주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올리어 구원 얻고 난 담음에 그 교회의 초창기부터 기독교도들로 구성된 외적 천국이 이같이 없어진 것을 뜻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 교회 초창기부터 기독교도로 이루어진 외적 천국에 대하여 많은 특수적인 것들을 허락하심을 얻어 알게 되었으나, 단 한 기지 것 곧 최후 심판 때 없어진 이전 하늘이 그때까지 남아 있도록 허락하심을 입은 것은 외적 천국 또는 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이는 그들이 내적으로 말고 외적으로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이것을 여기서 (다) 인용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는 위(398)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외적 교인이 있는 천국을 "바다"라 말하느냐 하면 영계에서의 그들의 거처가 멀리서 보면 바다 안에 있는 듯 보이며, 천적 천사들 곧 가장 높은 천국에 있는 천사들은 에텔의 대기 속에 있는 듯 보이며, 영적 천사들 곧 중간 천국 천사들은 공기의 대기 속에 있는 듯 보이며, 또 영적-자연적 천사들 곧 가장 얕은 천국의 천사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멀리서 보면 바다 같이 보이는 물기의 대기 속에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말씀 가운데 다른 많은 곳에서도 "바다"는 천국의 외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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