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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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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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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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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죽일 터인 즉"은 내적으로 믿음만의 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반대하고 새교회의 두 본질을 공격하며 거역할 것과 또 힘 닿는 한, 남들도 이것을 거절케 할 것을 뜻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왔고, 메뚜기같이 보였던(요한계시록 9:1-12)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이 믿음만의 교리 안에 내적으로 있는 사람들인 것은 거기서 드린 설명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곧 아시게 되는 바와 같이 그 교회의 이 두 본질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것을 뜻하며, "저희를 이기고 죽일 터인 즉"은 자체 안에서 이 두 본질을 거절하고 근절시키는 것과 힘 닿는 대로 남들로 하여금 같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믿음만의 교리 안에 내적으로 있기를 원리원칙으로 삼은 사람들이 왜 이 두 본질을 비난하고 거역하는가의 이유는 이에 전적으로 반대되는 두 가지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첫째 가까이 갈 수 있는 분은 주님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시기 때문이요, 둘째는 계명의 교훈대로 사는 것이 영적 생활이 아니요, 다만 도덕적 및 시민적 생활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오직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무도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도록 이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나 학술원에서 이 교리를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버린 사람들은 다 나중에 거기서 물러서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아니한 이에 대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들은 그들의 영혼에 있어서 많은 사탄이 있고 거짓 외에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영계의 동료들과 오가며, 이것으로는 그들이 그 거짓을 거부하기 전에는 거기서 떠날 수 없으며, 또 이것은 하나님이신 구주께 직접 나가 계명의 교훈대로 기독교적 생활을 시작하지 아니하면 거기서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이 죄 사함 곧 구원을 신앙의 행동 안에서, 나중에는 인정을 실천에 옮기는 것과는 별도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보존되며 지탱되는 상황에서 또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리를 일단 받아들인 사람들은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그렇게 불미스러운데서 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어떻게 하면 무식한 사람들 앞에서는 간교하게 말씀을 위화하여, 학자들 앞에서는 과변적(誇辨的)으로 이와 같은 것을 확인할 줄 알기 때문에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두 증인을 이기고 죽일 터이라"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들의 체질을 따르려 하며 또 그들의 정욕의 기쁨에 의하여 넋을 잃은 사람들 외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생각할 때는 그들의 심중에 이러한 정욕을 품고 양손으로 그들의 신앙을 껴안으며, 어떠한 말이나 자신 있는 어조로 말하면 구언 얻는 줄 알고,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 것은 고려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 세상이 어떻게 생각할 것만 유의하기 때문이다.

셋째, 젊어서 칭의(稱義)의 신비라고 말하는 그 신앙의 내적인 것에 젖어있던 사람들이 나중에 성직을 맡게 되면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들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명예를 위하여 그들의 신앙의 신비만을 간직하고, 그들이 지혜 있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을만하며 그들의 지혜로 인하여 부귀를 누릴만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앙의 결과가 왜 이와 같은 가하면 그 안에는 종교에 속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러함은 위(484)의 셋째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말씀 안에 있는 전쟁이 영적 전쟁이며, 진리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며, 거짓에서 나온 추리에 의하여 빚어지는 것임을 아래의 구절들로 분명하다.

"귀신의 영이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요한계시록 16:14)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하더라"(요한계시록 12:17)

"용의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우려 하더라"(요한계시록 13:7)

"너희는 시온의 딸들을 치기를 준비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예레미아 6:4)

"너희가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막으려고 아니하였느니라"(에스겔 13:5)

"그 장막이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서 저가 화살과 전쟁을 깨치시도다"(시편 76:2-3)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이사야 42:13; 시편 24: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이사야 28:5-6)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강호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저희가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며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나이다"(시편 140:1-3)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마태복음 24:5-6; 마가복음 13:6-8; 누가복음 21:8-10)

다니엘 10; 11; 12에 있는 북방과 남방과 그밖의 왕의 전쟁은 영적 전쟁 이외에 더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밖의 다른 곳에도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이사야 2:3-5; 13:4; 21:14-15; 31:4; 예레미아 49:25-26; 호세아 2:18; 스가랴 10:5; 14:3; 시편 27:3; 46:8-9).

말씀 가운데 전쟁이 영적 전쟁을 뜻하므로 레위인의 봉사를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병역복무라 불렀던 것이다.

"레위인은 총계하여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병역에 복무케 하니"(민수기 4:23, 35, 39, 43, 47)

"레위인은 회막에 들어와서 봉사하여 병역 의무를 마칠 것이니라. 오십 세 부터는 군 복무를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민수기 8:24-25)

위(447)도 보시기 바란다. "군대"가 교회의 선과 진리를 뜻하고, 반대의 뜻으로는 그 악과 거짓을 뜻하는 것을 말씀으로 다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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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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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여기에 나는 영계에서 일어난 세 가지 이야기를 더 할까 한다.

첫번째 이야기

나는 한 번 북쪽에서 맷돌을 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엇인가 이상하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말씀 가운데 "맷돌"과 "가는 것"이 말씀에서 교리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 것을 뜻하는 것을 상기하였다(794). 그래서 나는 소리 나는 곳으로 나갔다. 다가서자 그 소리는 사라지고, 일종의 반달 모양의 천정이 보였고 속으로 굴이 뚫린 출입구가 있었다. 이것을 보고 내려가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 방이 있었고 그 안에 책 속에 묻혀 앉아 성경책을 쥐고 거기서 그의 교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는 한 노인을 보았다. 종이쪽지가 흩어져 있고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적고 있었다. 옆방에는 서생(書生)이 몇 있어 종이쪽지를 모아 한 장에 그것을 옮겨 적고 있었다. 나는 먼저 그 노인의 주변에 있는 책에 대하여 물었다.

그는 그 책은 다 의롭게 하는 믿음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깊이 연구한 것이요, 이것은 영국에서 보다 더 깊이 연구한 것이요. 이것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깊이 연구한 것이요"라고 하였고 그는 덧붙여 이 책들은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다르지만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 얻는다는 이 점에서는 다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는 그에게 그가 이제는 말씀에서 의롭게 하는 믿음에 관한 제일 중요한 점을 간추리고 있었다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는 죄악으로 인하여 인류에 대한 은총을 끊으셨다는 것과 그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신적 필연성에 의해서 누군가로 속죄와 화해와 조정(調停)과 중재(仲裁)를 해야 하며, 그가 의(義)로 죄과(罪過)를 몸소 져야하며, 이것은 당신의 독생자 이외에는 아무도 결코 할 수 없으며, 이 일이 있은 뒤에야 그를 보아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말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나는 이것이 다 이치에 맞는 것을 보고 또 보아왔다. 아들의 공로를 믿는 신앙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요? 나는 이것이 성경에 맞는 것도 알게 되었소"

나는 이 말을 듣고 그가 그것이 이치에도 맞고 성경에도 맞는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치에도 어긋나고 성경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나는 그에게 분명히 하여 주기도 하였다.

그는 그때 크게 노하여 대꾸하였다. "어떻게 당신은 이같이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마음 문을 열고 말하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를 향한 은총을 거두시고 거절하셨다는 생각은 이치에(이성에) 벗어나지 않으오. 하나님의 은총은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오? 그렇다면 거두시는 것은 당신의 신성한 본질을 거두시는 것이 되지 않소? 그리고 당신의 신성한 본질을 거두신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이 되지 않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떠날 수 있을까요? 날 보세요. 하나님 편에서의 은총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또한 영원하오. 사람 편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할 수 있소. 만일 그가 받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는 것이요, 만일 하나님에게서 은총이 떠난다면 온 천국도 그 안에 든 온 인류도 끝을 볼 것이요, 그 만큼 인간은 어느 면으로 보나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요. 그래서 은총은 하나님 편에서의 은총은 비단 천사들과 인간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악마에게 대해서까지 라도 영원히 가는 것이요. 이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데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아들의 공로를 믿는 신앙을 거쳐서라 하오. 실은 은총을 거쳐서 영원까지 가는 것이요? 그런데 왜 노인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간다. 아니하오? 아들은 중보자요 구주가 아니신가요? 왜 영감님은 중보자요 구주 자신에게 나아가지 않으시오? 그분이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사람이 아니신가요? 이 세상 어떤 사람이 황제나 임금이나 왕자에게 직접 나아가지요? 시종이나 안내자가 있어야 하지 않으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과 그가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과 그분을 거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는 것을 모르시오? 성경을 찾아 보세요. 그러면 이 말씀이 성경에 의한 것을 알게 될 것이요.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 이치에도 어긋나지만 성경에도 위배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데 아버지 품 안에 계시고 또 그분만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그분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인 것도 말해 두오. 요한복음 14:6을 읽어보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성을 내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기에게 나를 쫓아내라 외쳤다. 내가 내 발로 곧 밖으로 나올 때 그는 내게 때마침 쥐어진 책을 문밖으로 던졌다. 그런데 그 책은 성경책이었다.

두번째 이야기

나는 밖으로 나온 뒤에 다시 두 맷돌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거친 소리를 들었다. 내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가자, 소리는 사라지고 그 대신 작은 여러 방으로 나누어 있으며 일종의 지붕이 있는 건물 속으로 들어가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문을 보았다. 각방에 두 사람이 앉아서 역시 말씀으로부터 신앙을 굳힐만한 것을 간추리고 있었다. 하나는 간추리고 하나는 쓰고 번갈아 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방으로 가서 문에서 선 채 물었다. "두 분을 무엇을 간추리고 또 쓰고 있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의롭게 하는 행동에 대하여, 아니면 행동 안에 있는 신앙에 대하여, 곧 의롭게 하고, 생명 있게 하고, 또 구원 얻게 하는 것, 동시에 기독교계의 제일가는 교리에 대한 것이라."

그래서 그에게 말하였다. "언제 그 신앙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 속으로 들어가는가 하는 어떤 행동의 표시를 내게 말해 주세요."

그는 대답하였다. "그 행동의 표시는 저주받은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제거한다고 생각하며 또 확신을 가진 신앙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드리는 것이오."

그때 나는 말하였다. "이렇게 행동이 개시(開始)되고 이것이 그 순간이라" 그래서 나는 물었다. "어떻게 내가 이 행동에 대하여 말한 것을 이해하게 될까요. 사람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이 행동에 기여하지 않았거든요. 목석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은 그 행동을 하는데 어느 모로 시작하거나, 뜻하거나, 이해하거나, 생각하거나, 작용하거나, 협력하거나, 적용하거나, 스스로 적응할 수 없거든요. 말해 보세요. 이것이 어떻게 당신이 말한 것과 일치하는가? 사람이 율법의 의(義)의 능력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제거하시는 그의 저주에 대하여, 그의 공로를 간직하게 하는 확신에 대하여, 사람이 생각하는 그 순간 그 행동이 개시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한다고요. 그리고 사람 스스로 이 모든 것을 행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사람은 이것들을 능동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한 것이요."

나는 대답하였다. "어떻게 사람이 수동적으로 생각하며 확신을 가지며 기도할 수 있다는 말이요? 사람에게서 동시에 능동적이거나 아니면 반동적인 것을 제거해 보십시오. 당신은 감수성도 그래서 전체를 그리고 그와 더불어 행동 자체까지도 제거하지 아니하오? 그때 당신의 행동은 이성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면 무엇이 될까요? 내 알기에 당신은 몇 사람과 더불어 이 같은 행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우려낸 신앙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예정론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을 믿지 아니할 것이요. 이것은 마치 그것이 그런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친구여 신앙에 속한 이러한 일에 있어서 사람은 스스로로 말미암은 듯 작동하고 협력하고, 그러한 협력이 없으면 신앙에 속한 그 행동 곧 당신이 말하는 교리와 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서기의 펜이나 갈고리로 긁으면 소금에 지나지 않는 딸랑딸랑 소리 나는 놋의 아내의 상(像) (누가복음 17:32)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믿으시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행동에 대하여 당신이 당신 자신을 목석같은 상으로 만들기 때문이요."

내가 이 말을 하자 그는 일어서서 나의얼굴에 던지기 위하여 손에 있는 힘을 다하여 촛대를 휘잡았다. 그러나 촛대는 갑자기 간 곳이 없어지고, 짙은 흑암 속에서 그는 그것으로 자기 동료의 이마를 후려갈기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웃으며 나와 버렸다.

세번째 이야기

영계의 북쪽에서 나는 우렁찬 물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곳을 가 보았다. 내가 가까이 가자 우렁찬 소리는 멎고 무슨 집회소에서 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거친 벽이 둘러싸여 있었다. 소리는 거기서 났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거기 문지기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저 안에 누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박식한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박식한 사람들이요. 그들끼리 초자연적인 것을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단순한 생각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아무 말도 않는다면 내 당신을 들어가게 할 수도 있지요. 나와 함께 문 앞에 서 있는 이방인도 들어가게 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들어가 보았다. 그것은 곡마단이었다. 그 한 가운데 강대상이 있었다. 일단의 박식한 사람들 곧 학자들이 모여서 신앙의 신비에 대하여 토론하고 있었다. 그때 토론거리로 제출된 문제 또는 명제는 신앙에 의한 의로운 상태에서 또는 그 행동 후 이 과정에서 사람의 행한 선이 종교의 선인가 아닌 가였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종교에 속한 선은 구원에 기여하는 선을 뜻한다고. 토론은 날카로 왔으나 사람이 그 신앙 상태에서나 또는 발전 과정에서 하는 선은 도덕적, 시민적, 정치적 선에 지나지 아니하며, 이것은 구원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으나, 오직 그 믿음만이 구원에 기여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우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굳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어떠한 사업이 자유 은총과 결합할 수 있다는 말이요? 구원은 자유 은총에 속한 것이 아니요? 인간의 어떤 선이 그리스도의 공로와 결합할 수 있다는 말이요? 구원은 믿음만으로 되지 않으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인간의 협력이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결합할 수 있다는 말이요? 이것은 다 사람의 도움이 없이 되는 것이 아니요? 이 세 가지 것(자유 은총과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만이 신앙의 행동 안에서 구원 얻게 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이 세 가지 것은 또 신앙 상태 또는 과정 안에서 유독 구원 얻게 하는 것으로 남지 않으오. 이로써 사람으로 말미암은 부대적(附帶的) 선은 결코 종교의 선이라 곧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구원 얻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러나 혹 누가 구원을 위하여 선을 행하면 그 선은 차라리 종교의 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요."

두 이방사람들이 문지기 옆 문간에 서 있었다. 그들은 이 말들을 다 듣고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종교도 없어요. 하나님을 위하여,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선을 하는 것이 종교라 말하는 것임을 누가 모르리오."

또 다른 이방인은 말하였다. "그들의 신앙이 그들을 얼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문지기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냐"

문지기는 말하였다. "그들은 박식한 기독교인들이라"

그리고 이방인들은 대답하였다. "천만의 말씀이요. 당신은 우리를 속이고 있소. 저 사람들은 배우이요. 꼭 연극배우같이 말해요."

그때 나는 자리를 비웠다. 내가 바라보자 얼마 있다가 집이 있던 그곳에 늪이 있지 않은가.

내가 보고 들은 이 모든 것은 내가 나의 육신과 동시에 나의 영혼이 아울러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보고 들은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의 영혼을 나의 육신에 결합하사 내가 동시에 두 세계에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집에 들어가고 또 그들이 그때 이러한 것들을 깊이 생각하였으며, 또 기록한대로의 사건이 생긴 것들은 다 주의 신성한 후원의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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