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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6:24

Funda

       

24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Okususelwe Emisebenzini kaSwedenborg

 

요한 계시록 풀이 #543

Funda lesi Sigaba

  
Yiya esigabeni / 962  
  

543.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남자라"는 새교회의 교리를 뜻한다.

말씀 가운데 "아들"은 교리의 진리와 진리와 선에 대한 이해성과 거기서 나온 사상도 뜻한다. 그러나 "딸"은 교리의 선을 뜻하고, 또 진리와 선에 대한 의지와 거기서 나온 애정을 뜻한다. 또 "남자인 아들"은 영적인 사람 안에 잉태(孕胎)되었다가 자연인 안에 간직하게 된 진리를 뜻한다.

그 이유는 말씀 가운데 "대(代)와 출생"은 영적 세대와 출생을 뜻하며, 그 모두가 일반적으로 선과 진리에 관련하고 있기 때문이다(535). 왜냐하면, 남편으로서의 주님과 아내로서의 교회에서 나오고 태어나는 것은 그밖의 다른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낳은 "여자"가 새교회를 뜻하므로 (535) "남자인 아들"이 새교회의 교리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뜻하는 교리는 1758년 런던판 <새 예루살렘 그리고 그곳의 교리>와 1763년 암스테르담 판 <주님에 관한 교리>, <성경에 관한 교리>, <삶에 관한 교리>와 같은 것을 뜻한다. 교리는 교리에 속한 모든 진리를 뜻하기 때문이요, 교리는 그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이 교리를 쓸 무렵, 용을 따르는 자들이 내 주위에 서서 있는 분노를 다하여 애써 그 교리를 집어 삼키려고 곧 없애려고 하였다. 이 소식을 허락하심을 입고 전하는 것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이렇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의 주위에 서 있던 용을 따르는 사람들은 개혁 교회의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영적 결혼에서 태어나는 그밖의 다른 자손이 없기 때문에 남아(男兒)는 이해성과 다음에는 사상 안에 있는 진리와 선을 뜻한다. 그리고 여아는 의지와 다음에는 그 애정 안에 있는 진리와 선을 뜻한다. 따라서 말씀 가운데 "아들"은 진리를 뜻한다. 이것을 다짐하기 위하여 몇 구절을 인용할까 한다. 이것으로 이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으니"(시편 127:3-5)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미가1:16)

"내가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를 보았더니 그가 가로되 이는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셨는 기름 발리운 자들이라"(스가랴 4:11, 14)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내 자녀가 나를 떠나고 있지 아니하니"(예레미아 10:20)

"원수들이 이기며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예레미아애가 1:16)

"오 예루살렘아 네 아이들이 곤비하여 온 거리의 모퉁이에 누웠도다"(이사야 51:17-18, 20)

"너희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아비를 먹으리니 너희 중에 남은 자가 다 사방에 흩으리라"(에스겔 5:10)

"장차 자식이 부모를, 아비가 지식을 대적하여 나뉘이리라"(마태복음 10:21; 마가복음 13:12; 누가복음 12:53)

"네가 또 나의 준 금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에스겔 16:17)

"예수 가라사대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마태복음 13:38)

"인자"가 말씀의 신성한 진리 곧 주님이신 것은 <주님에 관한 교리 19-28>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구절 가운에 "아들들의"말씀에서 나온 교리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뜻하며, 추상적으로는 진리 자체를 뜻한다. 그밖의 다른 곳에 있는 것도 같다. 이사야 13:17-18; 14:21-23; 43:6; 49:17, 22; 51:17-18; 60:9; 예레미아 3:24-25; 5:17; 에스겔 14:16-18, 20;16:20, 36, 45; 20:26, 31; 23:37; 호세아 11:9-11; 스가랴 9:13; 시편 144:11-12; 신명기 32:8.

"딸"이 교회의 진리에 대한 애정을, 따라서 그 애정으로서의 교회를 뜻하는 것은 말씀 안에 있는 많은 구절에 나타난다. 그것을 다 인용한다는 것은 여러 면을 채울 것이다. "시온의 딸"이니, "예루살렘의 딸"에 대한 몇 구절은 612에 인용한 것을 보시기바랍니다. 말씀 안에 그렇게 자주 인용된 것은 어떤 "시온의 딸"이니, "예루살렘"이나, "유다"나 "이스라엘"의 딸을 뜻하지 아니한 것을 누가 보지 못하랴?

  
Yiya esigabeni / 962  
  

Okususelwe Emisebenzini kaSwedenborg

 

주님에 관한 교리 #19

Funda lesi Sigaba

  
Yiya esigabeni / 65  
  

19. 6장. 하나님의 아들은 신적 인성으로서 주님을 말하며 인자는 말씀으로서 주님을 말한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세 신격 가운데 아버지의 신격과 다른 두 번째 신격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부터 나셨다는 신념은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 신념은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고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원부터 나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이해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것은 나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 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사람이 그렇 게 말하니까 나도 그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믿으니까 나도 그것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원부터 계신 아들은 없으며 오직 주님이 영원부터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이 누구이며 아들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2] 아버지이신 여호와로부터 잉태하시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주님의 인성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다음 구절들에서 분명하다.

누가복음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마리 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누가복음 1:26-35)

여기서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라 하리라” 하였다. 또한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리라” 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으로 부터 잉태되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난 인성을 “하나님의 아들”이라하는 것이 분명하다.

[3] 이사야서에,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처녀에게서 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잉태된 아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부르며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마태복음 1:22-23에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4] 이사야서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그것은 여기서도 같다. 말씀에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다”고 기록되었으며 그 아들은 다음 절의 선지자의 말씀에서도 분명한 것처럼 영원부터 있는 아들이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신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선지자의 말은 누가복음 1:32-33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한 말과 같은 것이다.

[5] 시편에,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시편 2:7, 12)

여기서도 영원부터 있는 아들을 뜻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 아들을 뜻한다. 이것은 오시기로 되어있는 주님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내리신 명령이라고 한 것이다. “오늘”은 영원부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때를 말한다.

[6] 시편에,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리니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내가 그를 장자로 삼고(시편 89:25-27)

시편 전체는 오시기로 되어있는 주님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를 아버지라 부르실 분이시며 “장자”가 되실 분이시며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뜻한다.

[7] 또 다른 곳에서는 주님을 가리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가지(이사야 11:1)

다윗의 가지(예레미아 23:5)

여자의 후손(창세기 3:15)

독생자(요한복음 1:18)

영원한 제사장, 주(시편 110:4-5)

[8] 유대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이며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메시아로 아는 것은 다음 구절들에서 분명하다.

요한복음에,

베드로가 말하되,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나이다(요한복음 6:69)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 11:27)

마태복음에,

대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마태복음 26:63-64; 마가복음 14:62)

요한복음에,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한복음 20:31; 마가복음 1:1)

그리스도는 희랍어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며, 또 히브리어의 메시아를 뜻한다. 그래서 요한은 말하기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요한복음 1:41)

또 다른 곳에서,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요한복음 4:25)

[9] 제 1장(1-7)에서는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 전체는 주님에 관한 것이며 그러므로 오시기로 되어있는 하나님의 아들은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입으신 인성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뜻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실로부터 인성은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하늘의 음성으로 부르신 “당신의 아들”을 뜻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7; 마가복음 1:11; 누가복음 3:22)

세례를 받은 것은 당신의 인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이 변화하셨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태복음 17:5; 마가복음 9:7; 누가복음 9:35)

그 밖에 마태복음 8:29; 14:33; 마가복음 3:11; 15:39; 요한복음 1:34, 49; 3:18; 5:25; 10:36; 11:4같은 곳에도 있다.

  
Yiya esigabeni /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