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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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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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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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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그 성의 성곽의 기초 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그 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의 글자의 뜻에서 이끌어낸 새 예루살렘의 교리에 속한 모든 것은 그 받아들이는데 따라서 빛으로 나타날 것을 뜻한다.

"열 두 기초 석"은 교리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한다(902). "성곽"은 글자의 뜻으로 있는 말씀을 뜻하고(898),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주의 새교회를 뜻하며(879-880), "보석"은 영적 의미로 말미암아 속이 드려다 보이는 글자의 뜻으로 있는 말씀을 뜻한다.(231, 540, 726, 911) 그리고 이것은 받아들이는 여하에 따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에서 이끌어낸 교리에 속한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데 따라서 빛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건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 새교회의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알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람에게는 다 외적 및 내적 사상이 있어 내적 사상은 천국의 빛 안에 있고 지각이라 말하며, 외적 사상은 이 세상 빛 안에 있으며, 모든 사람의 이해성은 천국의 빛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며, 만일 그가 어떠한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보려고만 한다면 그 빛에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러함은 많은 경험에 비추어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놀라운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과 지혜의 기쁨은 사상을 높이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전에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러함을 환하게 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환하게 하는 이 빛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거쳐서 나오는 이외의 근원에서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속한 사람들은 주께로 직접 나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 빛은 질서 정연하게 곧 의지의 사랑을 거쳐서 이해성의 지각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사상 안에서는 이해성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이에 따라서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맹목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교의를 다짐한 사람들은 어떠한 진리도 빛 안에서 보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에게로 들어가는 빛의 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개신교회는 이 교의를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설득력으로부터 물려받고 있다. 이것은 언명하기를 교회 자체, 곧 그들은 교황과 추기경회의 뜻하는 이것 외에는 어떠한 사람도 말씀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과 그 교회가 내놓은 모든 교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단으로 간주하고 파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러함은 그 종교의 모든 교의가 설정된 트렌트 종교회의(The Council of Trent)조항을 보면 분명하다. 그 끝에 이러한 말들이 있다.

그때 의장 모로누스는 말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박수갈채가 뒷 따르고 그밖의 사람들 가운데서는 로레인과 교부들의 추기경의 이 성명이 따랐다.

[추기경] "우리도 믿습니다. 우리는 다 이것과 똑같은 의견이요. 우리는 다 이것을 동의하며 받아들이며 이에 서명합니다. 이것은 축복받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신앙이요, 교부들의 신앙이요, 정통신앙입니다."

[화답자] "그렇습니다. 아멘, 아멘"

[추기경] "모든 이단자에게는 저주로다"

[화답자] "저주로다. 저주로다."

트렌트 종교회의 교령(敎令)은 이 책 서두에 요약한 것을 실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실은 단하나의 진리도 없는 것이다. 위의 특수적인 것들을 인용한 것은 개신교도들은 그 종교적 설득력으로부터 맹목적 신앙 곧 알지 못하는 신앙을 물려받았다는 것과 앞으로도 굳이 이 신앙을 가지고 있으려는 사람들은 주로부터 나온 신령한 진리 안에서 밝히 깨달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해성이 신앙에 순종하는데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이해성이 교회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한 신학은 하나의 기억에 속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며, 다만 기억에 지나지 아니한 것은 사려분별에서 벗어난 모든 것과 같이 사라져 버리고 희미하게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음 15:14)

그들이 소경인 것은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형상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9)

"형상을 얻으리라"는 신성한 진리 안에서 배우고, 깨닫고, 살찌게 될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문 곧 주를 거쳐서 들어가지 아니한 사람은 다 "도적"이요 "강도"라 부르나 문 곧 주를 거쳐서 들어가는 사람은 같은 장에 "양의 목자"라(요한복음 10:1-2)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구여 주께로 나아가며 악을 죄로 알고 끊고 믿음만을 버리시오, 그리하면 여러분들의 눈이 열리며 놀라운 것을 보며 그것으로 더불어 감명을 받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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