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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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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와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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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한 교리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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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또한 알아야 할 것은 말씀의 글자의 뜻은 그 안에 감춰진 참된 진리를 지키는 감시자라는 것이다. 글자의 뜻은 이렇게 또는 저렇게 바뀔 수 있고 선택한 방향에 따라 설명될 수 있지만 그 내적인 것은 손상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감시자인 것이다. 글자의 뜻을 한 사람은 한 방향으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은 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춰진 신적 진리를 왜곡하는 것은 해로운 일이다. 이것은 말씀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자의 뜻은 이것을 막는 감시자이다. 그리고 자기 종교의 거짓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 거짓을 마음에 굳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효과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말씀을 모독하지않기 때문이다.

[2] 이 감시자가 말씀에 기록된 그룹의 뜻이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쫓겨난 후 에덴동산의 입구에 쳐 놓았던 그룹의 의미가 이것이다. 그것에 대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24)

그룹은 감시자를 뜻하고 생명나무의 길은 사람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뜻한다. 두루 도는 불 칼은 궁극에 있어서 신적 진리를 나타내며 이것은 글자의 뜻으로서 말씀과 같은 것이므로 그렇게 돌 수 있는 것이다.

[3] 다음의 말씀도 같은 뜻이다.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속죄소를 궤 위에얹고 (출애굽기 25:18-21)

이것이 그룹의 의미이므로 주님이 모세와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25:22; 민수기 7:89)

주님은 완전한 것 안에서가 아니면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것, 그리고 글자의 뜻 안에서 말씀은 완전한 상태의 신적 진리라는 것은 위의 37-49항에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룹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다음 말씀의 뜻도 결코 다르지 않다.

너는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수놓아서 (출애굽기 26:1, 31)

성막의 휘장은 위의 46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천국과 교회의, 그러므로 말씀의 궁극적인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음 말씀의 뜻도 위의 47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르지 않다.

예루살렘 성전 중앙에 있는 그룹들 (열왕기상 6:23-28)

성전의 벽과 문에 아로새긴 그룹들 (열왕기상 6:29, 32, 35)

새 성전 안의 그룹들 (에스겔 41:18-20)

[4] 그룹은 말씀 안에 있는 주님과 천국, 그리고 신적 진리에 직접 접근하지 않고 궁극의 것을 거쳐 간접적으로 접근하도록 세운 감시자를 뜻하므로 말씀에서는 두로의 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너 그룹아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에스겔 28:12-14, 16)

두로는 진리와 선의 지식으로서 교회를 나타내므로 두로의 왕은 그 안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이러한 지식이 있는 말씀을 나타낸다. 궁극으로서 말씀, 즉 글자의 뜻은 여기에 기록된 왕이며 또한 그룹으로 표상한 감시자인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말씀에서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다”, “각종 보석으로 단장하였다”, “그룹아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다”, 그리고 “너 지키는 그룹아”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보석은 말씀의 글자의 뜻에서 나오는 진리를 뜻한다는 것은 위의 45항에서 알 수 있다. 그룹은 감시자로서 궁극적인 신적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시편 18:9-10)

이스라엘의 목자여,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시편 80:1)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시편 99:1)

“그룹을 타고 다니시는 것”과 “그룹 위에 좌정하시는 것”은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 위에 계심을 뜻한다.

[5] 에스겔 1, 9, 10에 있는 그룹은 말씀 안의 신적 진리와 그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영적 의미가 열리지않으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에스겔 1에 기록된 그룹들의 모든 의미가 간략하게 내게 밝혀졌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씀의 신성한 영향력에 대한 것은 에스겔 1:4에 그것이 사람을 나타내는 것은 에스겔 1:5에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과 결합하는 것은 에스겔 1:6에 말씀의 자연적인 것과 그 특성은 에스겔 1:7에 말씀의 자연적인 것과 결합된 영적, 천적인 것과 그들의 특성에 대해서는 에스겔 1:8,9에 선에 속한 신적 사랑과 천적, 영적, 자연적 진리가 그 안에 따로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은 에스겔 1:10,11에 그들이 모두 하나를 바라보는 것은 에스겔 1:12에 주님의 신적 선과 신적 진리에서 비롯한 말씀의 영향력과 그것 때문에 말씀이 살아있는 것은 에스겔 1:13,14에 선과 진리의 교리는 말씀 안에 있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것은 에스겔 1:15, 21에 주님의 신성은 말씀 위에 있고 말씀 안에 있는 것은 에스겔 1:22-23에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것은 에스겔 1:24-25에 주님은 천국 위에 계신 것은 에스겔 1:26에 신적 사랑과 신적 지혜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은 에스겔 1:27-28에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요약한 내용은 천국의 말씀과 비교한 것이고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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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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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Ⅲ. 자연인에 지나지 아니하는 사람은 유럽이라는 지구의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만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나마 그 안에서 갈라져 있는 것을 보고 굳이 하나님의 섭리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

[1] 기독교를 유럽이라는 지구의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만이 받아들이는 것은 위에서 방금 말한 바와 같이 혼합 종교인 모하메드교처럼 동양인에게는 맞지 않았고, 맞지 않은 종교는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면 한 아내 외에 더 한 아내와 결혼하는 것은 불법이라 하는 종교는 오랫동안 일부다처주의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다른 계명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2] 또 말씀을 가지고 있는 백성이 있으면 이 세상 좁은 지역에서 그 종교를 받아들이든지 넓은 지역에서 받아들이든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 관한 교리 104-113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회에 다니지 아니하고, 따라서 말씀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씀에서 나온 빛이 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말씀을 경건하게 읽고 주를 말씀으로 예배드리면 주께서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께서 말씀이시며 또 말씀은 천국을 이루는 신성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있으리라" (마태복음 18:20)하였던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말씀과 더불어 이것을 사람이 사는 이 세상 많은 곳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상업은 온 지구를 누비며, 그들은 어디서나 말씀을 읽고 또 말씀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꾸며낸 말 같으나 사실이다.

[3] 기독교는 말씀으로 있기 때문에 분파가 있다.

또 말씀은 시종여일 오로지 상응 물로 쓰여 있으며, 상응 물은 대부분이 진리의 가상이며, 그러나 그 안에는 순수한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교회의 교리는 말씀의 글자의 뜻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반론, 논쟁 및 의견차이가 일어나기 마련이요, 특히 말씀의 이해성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말씀 자체에 있어서나 주의 신성 자체에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말씀이 거룩한 것과 신성은 주께 속하는 것을 어디서나 시인하기 때문이요, 이 둘은 교회의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러기 때문에 쏘시니안 (Socinian)이라 해서 주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파문당하며, 말씀의 거룩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나는 말씀에 대한 특기할만한 사실을 더할까 한다. 그것으로 말씀은 내적으로 신성한 진리 자체인 것과 가장 깊게는 주님이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4] 어떠한 영인이 말씀을 펴면 언제나 그리고 그의 얼굴을 거기다대고 비비거나 옷을 문지르면 그의 얼굴과 옷은 문지른 것만으로 달 (빛)처럼 아니면 별 (빛)처럼 빛나며, 이것도 그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세계에서 말씀보다 더 거룩한 것이 없다는 증거이다. 말씀은 시종여일 오로지 상응물로 쓰여 있다는 것은 성경에 관한 교리 5-26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교리는 말씀의 글자의 뜻에서 나와야 하며, 그것으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은 같은 책 50-61항을, 이단이설을 말씀의 글자의 뜻으로부터 억지로 갖다 붙일 수 있으나, 이것을 확정짓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은 91-97항을, 그리고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있고, 말씀의 이해여하에 따라 있는 것은 76-79항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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