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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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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 20: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용주의자들의 선동을 받고 그들이 교회의 모든 진리를 차버리고 새교회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주님과 생활에 관한 교리까지도 깨뜰려고 노력한 것을 뜻한다. "지면에 널리 퍼져"는 교회의 모든 진리를 박차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퍼저"(going up)는 위로 올라가고 옆으로 지나가는 것 곧 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요, "지면에 널리"는 곧 알게 될 것과 같이 교회의 진리를 뜻한다. "성도들이 진을 두루는 것"은 다음 항목에서 알게 될 것과 같이, 새교회의 모든 것을 애워 싸서 깨뜰려는 것을 뜻하고, "사랑하시는 성"은 새교회의 교리를 뜻한다. "성"이교회의 교리를 뜻하는 것은 위(194, 501, 502, 712)를 보면 알 수 잇을 것이요, "사랑 한다"고 말한 것은 그것이 주님과 생활을 다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기서 뜻하는 새 예루살렘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낱말들의 뜻임은 말씀의 영적 의미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사람도 지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면에 널리"는 교회의 진리를 뜻하며, "성도의 진"은 새교회의 모든 것 곧 그 진리와 선을 뜻하며, "성"은 그 교리를 뜻한다는 것이 어떠한 사람의 생각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마음에 의심이 가지 않도록 "널리"와 "성도의 진"이 영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증거 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이로써 이러한 것들이 이 낱말들의 뜻임을 나중에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왜 "지면에 널리"는 교회의 진리를 뜻하느냐 하면 영계에도 동, 서, 남, 북의 네 방위가 있어 동과 서는 길이를, 남과 북은 넓이를 이루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동"과 "서"는 선을 뜻하고, 따라서 길이도 같은 것을 뜻하며 또 지혜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남과 북에서 살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남"과 "북"은 진리를 뜻하고, 이에 따라서 넓이도 같은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한 더한 것은 1758년 런런 판 <천국과 지옥 141-153>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넓이"가 진리를 뜻하는 것은 말씀의 아래 구절에 나타난다.

"여호와는 나를 대적의 손에 감금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라"(시편 31:8)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시편 118:5)

"여호와는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도다"(시편 18:19)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하박국 1:6)

"앗수르는 흘러 유다에 들어가서 창일하고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넓은 곳)에 편만하리라"(이사야 8:8)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같이 저희를 먹이시리라"(호세아 4:16)

그밖에 다를 구절은 (시편 4:1; 66:12; 신명기 33:20)

또 아래의 말씀은 그밖에 다른 어떠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새 예루살렘 성의 넓이(요한계시록 21:16).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이 새교회를 뜻한다면 "그 넓이와 길이"는 넓이나 길이를 뜻할 수 없고, 오직 그 진리와 선을 뜻하며, 스가랴서에 있는 바와 같이 진리와 선은 교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천사에게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의 장광(長廣)을 보고자 하노라"(스가랴 2:2)

아래의 말씀도 같은 것이다.

새 전과 새 땅의 넓이와 길이(에스겔 40-에스겔 47).

또 번제단과 장막과 떡을 두는 탁자와 분향단과 그 안에 있는 궤의 길이와 넓이는, 예루살렘 성전과 그밖의 척량으로 기록한 많은 사물의 "길이와 넓이"도 같은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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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풀이 #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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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릇된 교리 안에 내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새교회의 두 본질을 전적으로 거역할 것을 뜻한다.

"두 증인의 시체"는 새교회의 두 본질 곧 주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신 것을 시인하는 것과 계명의 교훈에 의한 생활로 주와 결합한다는 것을 뜻한다(490, 그밖에). "큰 성의 거리"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릇된 교리를 뜻한다. "거리"가 거짓을 뜻하는 것은 곧 알게 될 것이요, "성"은 교리를 뜻한다(194). "큰 성"이라 말하였다. 이 교리가 평신도들에게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성직자들 간에는 전 개혁교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 가운데 "거리"는 "길"과 거의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거리는 성안에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진리 또는 그릇된 교리를 뜻한다. "성"이 교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길"이 교회의 거짓 또는 진리를 뜻하는 것은 "땅"이 교회를 뜻하기 때문이다(285).

"거리"가 진리 또는 그릇된 교리를 뜻하는 것은 아래의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 도다"(이사야 59:14)

"그 병거는 거리에 다니며 미치게 대로에서 이리 저리 빨리 가니"(나훔 2:4)

"야엘의 날에 대로가 비었고 이스라엘에서도 비었도다"(사사기 5:6-7)

"찬송의 성읍이 어찌 버릴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청년들은 그 거리에 엎드려 지겠고"(예레미아 49:25-26; 50:30)

"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나사렛인의 얼굴이 숯보다 검어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저희가 우리 발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도다"(예레미아애가 4:5, 8, 14, 18)

"내가 열국을 끊어버렸으므로 그 망대가 황무하였고 거리를 비게 하였도다"(스바냐 3:6)

"육십 이 이레가 지날 때 곤란한 동안에 예루살렘 거리가 중건되리라"(다니엘 9:25)

"새 예루살렘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요한계시록 21:21)

"그 성 길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요한계시록 22:1-2)

그밖의 이사야 15:3; 24:10-11; 51:20; 예레미아 5:1; 6:16; 7:17; 9:21; 11:13; 44:9, 17; 예레미아애가 2:11, 19; 에스겔 11:6; 16:24-25, 31; 26:11-12; 아모스 5:16; 스가랴 8:3-5; 시편 144:13; 욥기 5:10.

"거리"는 교회의 교리의 진리를 뜻하므로 이에 따라서,

"그들은 거리에서 가르쳤고"(사무엘하 1:20)

또 일렀으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 우리 길 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누가복음 13:26)

또 이에 따라서 위선자들이 길 모퉁이에서 기도하였으며(마태복음 6:2, 5), 또 그래서 집주인이 그 종에게 이르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그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누가복음 14:21).

같은 이유로 그릇된 것과 속임수를 쓴 것도, 거리의 분토같이(이사야 5:25; 10:6; 미가 7:10; 시편 18:42)

"그릇된 예언을 받은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라"(예레미아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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