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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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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육일을 지나야 하리라

6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 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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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독교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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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 네 번째 영계 체험

나는 영계에서 두 가축 떼를 보았는데, 그 하나는 염소 떼였고, 다른 하나는 양 떼였다. 나는 영계에서의 동물들은 거기에 현존하는 영들의 애정과 사상에 상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히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까이 접근해 감에 따라서 동물들은 사라지고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염소 떼가 자기들의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앙의 교리로 굳어진 자들을 표상하고, 양 떼는 인정과 신앙이 하나라고 믿고, 또는 선과 진리가 하나라고 믿는 자들을 표상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염소들처럼 나타난 자들에게 말했다.

"왜 여기 모여 있소?"

그들의 대부분 이 성직자였는데,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비를 시로 읊었기 때문에 박식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그 목적이 아래에 제시 되는 설명을 고찰하기 위한 종교회의를 형성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내게 일러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는 바울의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구절에서 영원 전부터 세 인격의 삼위 (三位)에 두는 오늘날의 교회의 신앙이 의미되지 않고, 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는 신앙이 의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율법의 행위가 여기서는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말한 모세의 율법 (법규)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씀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서 기괴한 두 가르침 (非眞理)이 일어 났으니, 이른바 바울이 오늘날의 교회의 믿음과 십계명에 의해서 규정된 율법의 행위를 의미한다고 하는 오류이다. 그러나 바울은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전한 모세의 규례를 의미하고 있음이, 그가 베드로에게 한 말에 의해서 명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유대교화한 것을 책망하고 있음을 다음 구절에서 우리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 고로" (갈라디아서 2:14-16)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the faith of jesus Christ)'은 그분에게서 비롯된 신앙을 의미한다. (338항 참조) 그리고 '율법의 행위'라고 한 것은 바울이 모세의 규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신앙의 율법 (the law of faith)과 행위의 율법 (the law of works) 사이를 구별하였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 그리고 '할례자'와 '무할례자' 사이를 구별하였으니, '할례'는 항상 그랬던 것과 같이 유대주의 (judaism)를 의미했다.

더구나 그는 이 말들로 이 주제를 끝맺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27-3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로마서 2:6)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10)

이 외에도 그의 글에는 이런 많은 다른 구절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서신에서 알 수 있듯이 선행이 없는 신앙을 야고보가 거부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야고보서 2:17-26)

유대인들을 위해서 의도된 규례가 모세 오경에서 율법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율법의 행위들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바울이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말한 모세의 '율법'은 율법의 행위들을 의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음 구절들을 읽고 생각해 보자.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레위기 7:11)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 (레위기 7:37)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레위기 12:7)

"이는 짐승과 새와 뭍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기어 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니라" (레위기 11:46)

"문둥병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 (레위기 13:39; 14:2, 32, 54, 57)

"이는 유출병 환자와 부정한 자가 부정을 벗는 규례니라" (레위기 15:32)

"의 심의 법" (민수기 5:29-30)

"나실 인의 법" (민수기 6:13, 21)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 (민수기 19:14)

"흠 없는 암송아지를 드리는 법" (민수기 19:2)

사실 모세 오경 전체가 '율법서(the Book of the Law)'라고 칭해진다. (신명기 31:9, 11-12, 26, 누가복음 2:22; 24:44;요한복음 1:45; 7:22, 23; 8:5)

더구나 바울은 사람이 십계명의 율법에 따라 살아야 하며, 그 율법은 사랑에 의해서 완성된다 (로마서 13:8-11)고 했고, 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3:13)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그들이 모여서 논의하고자 한 이유였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들에게서 물러났다. 그랬더니 멀리 떨어진 곳에 염소처럼 생긴 것들이 나타났고 때로는 누웠다가 때로는 일어났다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양 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생각하고 있을 때는 누워 있었고 결론을 냈을 때는 일어섰다.

나는 특히 때로는 쑥 내밀고 때로는 뒤로 내밀든가 구부러지게 하는 그들의 뿔에 주목했다. 아직도 염소처럼 보이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양 떼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의 결정이 무엇이오?" 그들은 믿음만이 인정을 산출하는데, 그것은 마치 나무가 그 열매를 내는 것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우레 소리가 났고, 번개가 번쩍였다. 그 순간 두 떼들 사이에 천사가 나타나서 양 떼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시오. 그들은 아직도 믿음만이 의롭게 하며, 능동적인 인정의 삶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예전 신앙에 고착되어 있소. 더구나 나무는 사람이고 신앙이 아니요. 그러니 회개하고 주님을 섬기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신앙을 가지게 될 것이오. 그 까닭은 회개하기 전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오."

그 때 염소들은 그 뿔들을 뒤로 뻗고, 양 떼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천사는 그들 가운데 서서 양들을 두 떼로 나누고 왼쪽에 있는 양들에게 말했다.

"염소들과 짝하시오. 그러나 늑대가 와서 그들을 몰아내고 당신들도 그들과 함께 몰아낼 것이라고 당신들에게 고하오."

두 양 떼가 갈라진 후에 왼쪽에 있던 양들이 천사의 위협하는 말을 듣고도 서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우리들의 옛 동무들과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양들에게 말했다.

"왜 당신들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사제들에게서 떠나갑니까? 믿음과 인정은 나무와 열매처럼 하나가 아닙니까? 그 까닭은 나무는 가지들에 의해서 그 열매가 계속되고 있으며, 만일 열매를 맺는 가지가 부러지면 열매는 썩고 미래의 번영을 위해서 도움을 주는 씨와 함께 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제들에게 그런가 안 그런가 물어보시오."

그리고 그들이 사제들에게 물었으며, 사제들은 증명하도록 자기들에게 부탁한 다른 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사제들이 대답했다.

"당신들은 바로 말했소. 그러나 나무에 열매가 연결되어 있듯, 신앙이 인정과 연결되어 있음에 관해서는 많은 의미들을 알고 있으나, 여기서 누설할 수는 없소. 왜그러냐 하면 신앙과 인정을 함께 묶은 고리 안에는 우리 사제들만이 풀 수 있는 많은 매듭들이 있기 때문이오."

그 때 사제들 중 하나가 오른쪽에 있는 양들 사이에 있다가 일어나서 자기 동무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에게는 그들이 이렇게 말했지만, 자기 동무들에게는 그들의 진실한 생각을 말했소."

그러므로 그들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제들이 진실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것과 같이 생각하지 않는가요?"

그는 말했다.

"아니지요. 구원과 영생을 생각해서 사람이 행하는 인정의 선이나 선행들은 아주 작은 정도의 선도 아니니까요. 그들은 자기의 행위에 의해서 자신을 구원하고 유일하신 구주의 의로움과 공로를 자신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자신의 것인 듯 느끼는 모든 선 행에 그것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앙이 선행들에 의해서 유지되거나 지탱되지 않는 고로 신앙과 인정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언한다오."

그러나 왼쪽에 있던 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사제들에 대해서 그렇게 잘라 말하는 것은 옳지 않소. 그들은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인정과 그 행위를 설교했소. 그들은 그것을 신앙의 행위라고 칭했으니까요."

천사가 대답했다.

"당신들은 그들의 설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오직 사제들만이 알 수 있는 말이니까요. 그들은 도덕적인 인애만을 의미하고,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선행만을 의미하고 있다오. 그들은 이것들이 신앙의 소산이라고 잘못 말하고 있소. 무신론자도 동일한 행위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요. 그래서 사람은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없고, 믿음만에 의해서 구원받는다고 만장일치로 주장한답니다. 자, 제가 한 예를 가지고 설명하여 보겠소. 사과나무가 사과를 생산하듯 사람이 구원을 위해서 선행을 한다고 하면, 그 때 말하기를 사과들이 썩었다, 벌레가 들끓는다고 말합니다. 또 만일 포도나무가 포도를 내듯 영적 선을 행해야 한다고 하면, 그들은 그 포도가 무가치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때 그들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선행이 그들의 믿음의 열매들입니까?"

천사가 대답했다.

"나는 믿음과는 아주 무관하게 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은 믿음 가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태양을 쳐다보고 있을 때는 그들 뒤에 있어 그들이 뒤돌아 서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의 그림자 같고, 아무런 유용한 쓸모가 없이 쉽게 더럽혀지는 까닭에 자주 잘려지는 말꼬리들과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왼쪽에 있던 양 떼 가운데서 하나가 말했다.

"그래도 확실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신앙의 행위라고 불리어질 수 있소? 아마도 인정의 선은 하나님에 의해서 사람의 자발적 행위 속에 어떤 종류의 유입•애정•열망•영감•고무•자극• 인식•권고, 또는 통회로 인해서 주입되며, 그 결과로 사람은 현명한 행위 또는 십계명과 말씀에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이나 슬기로운 행동에로 자극되어질 것이고, 또 그 외에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하나님에 의하여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 속에 주입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선행이 신앙의 열매라고 불리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 말에 사제가 답하였다.

"안 그렇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설 교에서 선행이 어떤 그러한 방편에 의해서 되어 진다고 말한다고 해도, 그들은 그것들이 결코 신앙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낱 말들을 써서 하고 있답니다. 어떤 이들은 선행을 서원하지만, 오직 신앙의 것으로써 하고, 신앙이 인정과 연결된 표시로는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씀에 의한 결합을 생각하고 있소."

다른 자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결합은 있는 것이요."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진짜 결합은 없소.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진짜 결과는 이룩되지 않소. 그들은 모든 사람의 합리적 또는 자발적 노력들은 신앙의 문제들로서, 공로에 의하여 오염되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면들에 있어서는 마치 전신주와 같이, 이해하고 의지하고 일하고 협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하나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나는 한 번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소. ‘내가 포도원을 얻었으니 이제 취하도록 포도주를 마시겠다.’고요. 그러나 다른 자가 그에게 물었다오. ‘그래 당신은 포도주를 당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잔에서 마시겠소?’, ‘아니요,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보이지 않는 잔으로 마시겠소.’, ‘그렇다면 확실하오. 당신은 술에 취할 수 없을 것이요.’"

곧 이어 동일인이 이렇게 말했다.

"부디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말씀을 이해하는 것에 의해서 포도주로 당신을 상쾌하게 하시도록, 나는 당신에게 당부합니다. 말씀은 주님으로부터 오고, 주님은 말씀 안에 계시니 결국 주님께서 말씀이심을 당신은 알고 있소.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말씀에 의해서 선을 행하면, 당신은 주님에 의해서 그것을 행하고, 주님의 바람과 명령에 따라서 그것을 행하고 있소. 만일 당신이 주님을 향하여 우러르면, 주님은 당신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실 것이며, 당신은 그 것을 자기 스스로 주님에 의해서 행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어떤 사람이 ‘나는 이것을 왕의 소원과 명령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행한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소."

그다음에 목사를 향하여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하나님의 봉사자들아 그대들의 양 떼를 오도하지 말라."

이 말을 듣고서 왼쪽에 붙어 있던 무리 대부분이 오른쪽에 있는 양 떼에게 합쳐졌다.

목사들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가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바를 들었다. 우리는 목자들이다. 우리가 양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갔다. 그 때 그들이 말했다.

"이 사람 이 진리를 말했소. 진리에 의해서 선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내가 이것을 주님, 나의 임금의 소원과 명령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사제들이 시인할 여러 종류의 믿음과 선행의 결합이 주님의 신성한 섭리에 의해서 발견되지 않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것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말씀이신 주님에게 둔 신앙이 아니라서 말씀에 둔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소 떼와 같이 있던 여타의 사제들은 모자를 흔들고, "믿음만이요. 믿음만이라고요! 믿음 만세!"하며 소리를 지르면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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