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보그의 저서에서

 

하나님의 섭리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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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Ⅶ.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지시한다는 가상이 들지 않으면 이 모든 일은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

[1] 앞에서 충분히 입증한 것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사는 것이 그에게 보이지 아니하면, 그러므로 그 스스로 생각하고 뜻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듯 보이지 아니하면 사람일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이로써 사람은 그 자신의 분별력으로 그의 직업과 생활에 속한 모든 것을 지시하는 듯 보이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인도되거나 지시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축 늘어진 손을 하고, 입은 벌린 채, 눈을 감고, 숨은 들이마시고, 줄 것이나 기다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스스로 살고, 생각하고, 뜻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듯 보이는 지각과 느낌을 갖는 인간성을 스스로 포기할 것이다. 그는 또 그것이 있어 짐승과 구분되는 자유성과 합리성의 두 기능까지도 포기할 것이다. 이 가상이 없으면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고 협력하는 어떠한 기능 곧 영혼불멸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이 책 위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입증한 바 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려 한다면 주인의 선을 착실하게 실천하는 종과 하인처럼 분별력을 쓰시기만 하면 될 것이고, 이 분별력은 그것을 가지고 장사하라고 하였으나 그 빚을 갚아야 하는 달란트인 것이다 (누가복음 19:13-25; 마태복음 25:14-31).

분별력 자체는 사람에게는 그의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그것을 자기 것같이 믿는다. 이것은 나면서부터 모든 사람의 내성에 자리 잡고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려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안전하게 거처하여 사람이 그 문을 열거나 그리하여 주께서 그것을 밖으로 내던져버리지 않도록 문을 잠그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그가 주님으로부터 한다는 인식 아래 스스로 하는 듯 악을 죄로 알고 끊음으로써 이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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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누가복음 19

공부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스웨덴보그의 저서에서

 

요한 계시록 풀이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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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는 주께서 새 하늘로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면 곧 사랑과 신앙으로 시인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는 어떠한 사람도 주만이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이 "노래"는 주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는 주께 대한 시인과 주의 영광을 뜻하고(279, 617), "배우는 것"은 그것이 그러한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내적으로 지각하는 것 곧 이해하는 것, 그래서 받아들이고 시인하는 것을 뜻한다. 그밖에 달리 배우는 사람은 배우기는 하되 배우지 아니한 사람이다. 그는 간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십사만 사천"은 주만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612). 왜 그밖의 기독교인은 이 노래를 배우지 못하는가? 곧 주만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시인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어려서부터 서로 다른 세 분 하나님이 있다는 관념으로 젖어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삼위일체 교리 가운데 일렀으되 한 분 아버지와 다른 분인 아들과 또 다른 분인 성령이 있다 하기 때문이요,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라"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세 분이 한 분이라는 것을 덧붙여 말하였지만 그들의 사상 안에는 나눌 수 없는 신성의 본질을 셋으로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서열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밖에 교회 지도자들은 아들을 보시고 성령을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관념이 굳혀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이 하나님이시오, 아버지와 동등 되시다 생각하며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인성으로서의 주만이 의로우시며 "여호와 우리 공의"라(예레미아 23:5-6; 33:15-16)일컬으면서도 아들을 다른 보통 사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어떻게 주께서 이 세상에 나실 때 천상천하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없으며, 위 613에 인용한 모든 구절과 또 아래 구절을 듣고 읽었는데도 주께서 유일한 하나님이신 것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요한복음 16:15; 12:45)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신 것과"(요한복음 13:3)

"아버지여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나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 이온데"(요한복음 17:2-3, 1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태복음 28:18)

또 주께서 아버지이신 여호와로 잉태(孕胎)되신 것, 그리하여 주의 영혼이 아버지로부터 있었다는 것, 그밖의 다른 곳에 있는 이와 같은 많은 것들도 있다. 이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나신 주께 대하여 말한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말씀도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라.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있느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한복음 10:28, 38; 14:6-11)

그들은 이 말씀들을 듣기도 하였고 읽기도 하였을 것이나 어릴 때 받아들였고 나중에는 그들의 스승들로 말미암아 굳혀버린 그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주의 아래의 말씀을 보거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합리적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 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1, 9)

또 있다. 주께서 인성을 영광스럽게 한 것 곧 인류가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거쳐서 아버지 하나님께 결합할 수 있도록 인성을 아버지의 신성 곧 잉태부터 당신 안에 있었던 신성에 결합하신 것 이것이주께서 이 세상에 오사 당신의 인성을 영광스럽게 하신 이유였다는 것은 친히 요한복음에 충분히 가르치신 바 있다.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20)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요한복음 15:5-6)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또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 이니이다"(요한복음 17:19, 21, 23, 26)

또한요한복음 6:56과 그밖에.

이것으로 주께서 이 세상에 오사 당신의 인성을 영화롭게 한 것은 주 안에서 그리고 주를 거쳐서 인간이 아버지 하나님과 결합하고, 주께 나아가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히 나타난다. 이것은 또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당신을 믿어야 한다고 주께서 그렇게도 여러 번 말씀하신 것으로도 굳힐 수 있다(553을 보라). 이 모든 것은 주께서 인성으로 계신 당신 자신에게 관한 것을 말한 것이요, 만일 당신의 인성이 신성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사람 안에 사람은 당신 안에 있다느니,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당신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려고 아니하였을 것이요, 또한 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것을 누가 모르랴?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나아가는 것도 뜻하지 않으며, 또 당신을 보시고 구하라는 말씀도 아니요, 오로지 주께 나아가도록, 그리고 당신을 거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주 친히 가르치신 바와 같이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고 두 분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이것을 뜻한 것이다. 아래 구절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다.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복음 3:18)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예수 가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누가복음 9:48)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 하리라"(요한복음 14:13-14)

"주의 이름으로"하는 표현이 나타나는 그밖의 다른 곳들 마태복음 7:22; 18:5, 20; 19:29; 23:39; 마가복음 9:37; 16:17; 누가복음 13:35; 19:38; 24:47; 요한복음 1:12; 2:23; 5:43; 12:13; 15:16, 16:23-24, 26-27; 17:6.

"하나님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신성한 인성으로서의 주를 뜻하는 것은 위 81, 165, 584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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