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Luke 19:44

공부

       

44 And shall lay thee even with the ground, and thy children within thee; and they shall not leave in thee one stone upon another; because thou knewest not the time of thy visitation.

주석

 

부활절 수양

작가: Peter M. Buss, Sr. (기계 번역 한국어)

Before entering Jerusalem for the last time, Jesus wept over its future. This painting by Enrique Simonet, is called "Flevit super Illam", the Latin for "He Wept Over It". It is in the Museum of Malaga.

"그리고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분은 그 도시를 보시고 울면서 '당신도, 특히 이 시대에, 당신의 평화에 속한 것들을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이 당신의 눈에서 숨겨져 있습니다." (누가복음 19:41,42 ).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그들이 푸른 나무에서 이런 일을하면 마른 나무에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 누가 복음 23:28,31).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우셨습니다. 여인들은 그분을 위해 울었고,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승리의 순간에 슬퍼하고, 황폐의 순간에 슬퍼합니다.

종려주일 이야기에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 기쁨 뒤에는 배신과 시련, 십자가 처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한 성난 군중은 5일 전 주님을 왕으로 영접한 군중과 같은 무리였을까요? 주님은 왜 반드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승리의 길을 가셨을까요? 그분은 신성한 선에서 나온 신성한 진리이신 그분이 만물을 다스리실 것임을 선포하고, 그분의 위엄을 영원히 상징할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와 갈보리 사건은 그 위엄의 본질, 즉 참으로 그분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종려주일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군중이 기뻐하며 소리치고 있을 때, 그들은 왕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복음서 기자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왕의 슬픔을 바라보며 외치는 소리가 잦아들었을까요, 아니면 왕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파멸을 선포했을 때 궁금해했을까요? "너희 원수들이 너희 주위에 제방을 쌓고 너희를 둘러싸고 사방으로 막아서서 너희와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 자녀들을 땅에 떨어뜨릴 것이며, 너희가 너희의 방문 시기를 알지 못하여 돌 하나도 너희 안에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아마도 그분이 타시면서 환호성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상한 말은 잊혀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화가 왔다고 외쳤기 때문에 또 다른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시여! 하늘에는 평화, 땅에는 영광!" 그러나 예수님은 울면서 도시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특히이 시대에 당신조차도 당신의 평화를 만드는 것들을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이 너희 눈에서 숨겨져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웅장한 파노라마는 우리 인간 내면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말씀의 영적 의미에서 예수님이 승리하시는 곳은 바로 우리 마음속입니다. 그분의 진리의 경이로움을 보고 만물을 다스리는 그분의 능력을 느낄 때 우리는 그분께 왕관을 씌웁니다. 종려주일의 모든 행사는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큰 기쁨의 시간입니다. 종려주일의 수많은 군중처럼, 우리는 이 환상이 악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왕이자 하나님으로서 우리 안에서 쉽게 통치하실 것을 느낍니다.

그런 행복한 시간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그 안에서 기뻐하고 환희로 우리의 주님과 왕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 평화는 우리가 본 주님과의 연합을 통해옵니다(묵시록 설명 369:9, 11). 그러나 주님께서는 평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친히 아십니다. 이것 역시 주님은 말씀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주님 당시의 육적 예루살렘에서 통치자들은 거짓을 사용하여 진리를 파괴했고,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슬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영적 예루살렘에는 평화를 파괴하는 거짓 가치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에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비전과 진리를 남용하는 자기 사랑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감람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시며 우셨습니다. 그분의 울음은 자비의 표징이었는데, 그분은 우리를 해치고 우리의 평화에 반대하는 우리 안의 상태들을 슬퍼하셨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신비 5480; 묵시록 설명 365 [9]; 참조. 365:11, 340). 그러나 그분의 슬픔은 적극적인 힘이며 자비이며 그러한 상태를 없애기 위해 일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자연적인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그분의 뜻은 아닙니다. 그분은 다가올 전투에 대해 경고하실 때에도 우리에게 승리하실 것이며 악을 행하는 우리의 변명 인 예루살렘은 서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참조.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6588 [5]; 묵시록 설명 365 [9]).

그분은 자비로 인해 우셨고, "그분의 부드러운 자비가 그분의 모든 행위에 덮여 있기 때문에" 우는 일이 끝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 금요일에는 분명히 울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인들이 십자가를 따라가며 애통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로 피를 흘리셨고 가시 면류관으로 상처를 입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원수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만족해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황폐해졌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키우신 꿈이 이런 식으로 끝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그들이 사랑했던 지도자가 이렇게 끔찍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고난을 확신하면서 그분께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위해 울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애도하는 이들을 향하실 때 그분을 모욕하던 군중들이 잠잠해졌을 것입니다. 그분은 무한한 사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 그분은 다가오는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셨습니다. 그분은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통이 다가올 것이었습니다. 이 문장보다 우리 하나님을 이 땅에 오시게 한 목표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그분은 악한 사람들과 악한 감정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불행을 가져 오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울음 후에 기쁨을 주시고, 위로와 희망을 주시고, 마침내 더 이상 죽음이나 슬픔이나 울음이 없어야한다는 확신을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당시의 여성들은 실제로 육체적 슬픔에 직면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 신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빼앗기고 자비를 모르는 자들의 자비를 받는 선량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할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불임한 자, 잉태하지 않은 태, 수유하지 않은 유방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할 날이 오고 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진짜 이유는 육체적 잔인함 속에 훨씬 더 큰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다른 사람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 즉 주님을 따르는 능력을 빼앗는 것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전 세계의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 진리에 대한 온화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자선과 믿음입니다. 이들은 특히 악이 교회에 침투했을 때 발생하는 악의 희생자들입니다. 이들은 내면의 울음을 유발하는 것들, 침묵하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영의 슬픔을 유발하는 것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순진한 사랑은 이기적이라는 정당화와 함께 성장합니다. 사실 예루살렘의 딸들이 부패한 교회의 통치를 받았던 것처럼 자기 정당화에 의해 통치됩니다. 그 여성들이 유대 교회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때 그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진리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 우리는 영의 유혹을 받습니다. 지옥이 일어나서 이기적이고 악한 모든 즐거움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는 참으로 스스로를 위해 울게 됩니다.

고통받는 것은 진리 자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모두 강력합니다. 유혹을 받는 것은 진리에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고통받는 것은 우리의 자선과 믿음, 즉 그 사랑의 자녀들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불임한 자, 해산하지 않은 태, 젖을 먹이지 않은 유방이 복이 있도다'라고 말할 날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진리가 없는 사람, 이상이 없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사실 이것은 교회 밖에 있다가 새롭게 교회를 찾은 사람들이 삶의 거짓을 전투에 가져오는 사람들보다 더 쉬운 시간을 가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우실 때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분은 실제로 우리 안에 있는 악이 멸망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 금요일에도 같은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때 그들은 '산들에게는 "우리에게 떨어지라!", 언덕들에게는 "우리를 덮어라!"라고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서 승리할수록 천국이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약속이 담긴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를 유혹하는 지옥은 천국의 임재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덮고 숨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푸른 나무에서 이런 일을 행하면 마른 나무에서는 어떻게 되겠느냐?" 청중들은 그분이 그들 가운데 계실 때 그분의 진리를 거부했다면, 그분의 임재와 기적에 대한 기억이 말라 버린 후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적인 의미에서 녹색 나무는 그것에 대한 사랑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이상을 볼 때에도 우리는 유혹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마르면, 진리의 생명과 힘을 느낄 수 없게 되면 그 싸움은 훨씬 더 힘들어집니다.

종려주일에 주님께서 우시는 모습, 여인들에게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슬프게 경고하시는 모습에서 주님은 우리가 믿는 것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준비시키실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올 시련뿐만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신 지금 승리의 확신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참된 기독교 종교에는 그러한 경이로움과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가치 있는 사랑도 도전에 직면하기 전에는 우리가 지킬 수 없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우리의 고난에 눈물을 흘리시며 자비로 힘을 주시고, 꿈과 희망이 사라질까 두려워 눈물 흘리실 때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는 꿈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표현하고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체포되기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울음에 대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울며 애통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슬퍼할 것이지만 너희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때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지만, 아이를 낳자마자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움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슬픔이 있지만 내가 너를 다시 만나면 네 마음이 기뻐할 것이며 아무도 네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은 이제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찾았습니다. 박해자들의 손에 고난을 당하고 동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기쁨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들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개인적인 전투를 치르고 그분의 능력으로 내면의 적을 이겼을 때, 그들은 그분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도시를 위해 우셨다."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진리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참된 믿음과 참된 자선에 대한 우리의 희망도 함께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오셔서 승리의 길을 가시고 거절과 명백한 죽음의 잔을 마신 것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리니 그러나 기뻐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아멘.

(참조: 누가 복음19:29-44, 23:24-38)

성경

 

누가복음 22

공부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 하더라

24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 섬기는 자가 크냐 ?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 가로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 하시고

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 하시니라

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 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 하시니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黨)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이어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

71 저희가 가로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