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보그의 저서에서

 

하나님의 섭리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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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사람의 경우는 이것이 다르다. 사람에게는 자연적 사랑에서 나온 애정뿐만 아니라, 영적 사랑에서 나온 애정도, 천적 사랑에서 나온 애정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 36-54 (3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람의 마음은 세 등차에 속하기 때문이다. (Divine Love and Wisdom, part3)

그러므로 사람은 자연적 지식으로부터 영적 총명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여기서 다시 천적 지혜에까지 오를 수 있으며, 이 두 총명과 지혜로부터 주를 바라볼 수 있으며, 그리하여 주님과 결합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만일 합리성으로부터 이해성을 올릴 수 있는 능력과 자유성으로부터 이것을 뜻하는 능력이 없다면 애정을 이렇게 승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2] 이 두 기능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자기 밖에서 감각을 거쳐 지각한 것에 대하여 자기 자신 안에서 생각할 수 있으며 낮은 차원의 생각한 것을 높은 차원의 생각으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생각하여 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지금까지 뜻하여 왔고, 지금도 그렇게 뜻하고 있어", "나는 이것이 사실임을 이해해. 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사랑해"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어김없이 사람은 그의 사상에 대하여 생각하고, 마치 그 아래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다. 사람은 이 능력을 합리성과 자유성으로부터, 합리성으로는 보다 높은 사상에 대한 기능을, 자유성으로는 애정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데 이르기까지 뜻하는 기능을 가지고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유성이 없으면 그는 의지를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요, 이에 따라서 사상도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이렇기 때문에 세상과 자연에 속한 것이 아니면 어떠한 것도 이해하려 하지 아니하고 또 도덕적 및 영적 선과 진리는 어떠한 것인가를 이해하려 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지식으로부터 총명까지 승화할 수 없고, 지혜까지는 더욱 승화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기능들을 질식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그리고 그들에게 이미 심어진 합리성과 자유성으로 뜻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그들 자신을 사람 되게 하지 못한다. 두 기능으로 사람은 생각할 수 있고, 사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면에 있어서 그들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들이며,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기능을 남용하여 짐승보다 더 악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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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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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Ⅰ. 사람에게 이성과 자유 또는 합리성과 자유성이 있으며, 이 두 기능은 주께로부터 사람 안에 있는 것.

[1] 사람에게 합리성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가 이해한 것을 생각하며 뜻하고 말하며 또 행하는 능력 곧 자유성이 있는 것과 이 두 기능은 주께로부터 사람 안에 있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 264-270, 425 및 위 43, 44에서 다룬바 있다. 그러나 이 기능 가운데 어느 것이나 각별히 생각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의심점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이성에 맞게 행동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먼저 몇 가지 것을 말할까 한다.

[2] 그러나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사랑과 자유가 하나인 한 모든 자유는 사랑에 속하는 이것이다. 또 사랑은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에 자유 또한 그의 생명에 속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쁨은 그의 사랑으로부터 있고, 그 밖의 다른 근원으로는 어떠한 기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사랑의 기쁨으로 행하는 것은 자유로부터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무토막이 강물 따라가듯 기쁨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랑이 있어 어떠한 것은 조화를 이루고 어떠한 것은 불화를 이루기 때문에 자유도 그만큼 많은 종류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연적, 합리적 및 영적인 세 가지가 있다.

[3] 자연적 자유는 모든 사람이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 이로써 사람은 나와 세상 외에는 어떠한 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의 첫째가 되는 생명은 이 밖에 다른 것이 없다. 또 이 두 사랑으로부터 모든 악이 일어나며, 이리하여 악은 사랑에 속하게 되기 때문에 악을 생각하고 뜻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적 자유에 속하고, 추리판단해서 자체 안에서 악을 일단 굳히면 그는 그의 이성에 일치한 자유로부터 악을 행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가 악을 행하는 것은 자유성이라는 기능으로 하고, 그것을 굳히는 것은 합리성이라 하는 기능으로 하는 것이다.

[4] 보기를 들면 사람이 간음하고, 속이고, 모독하고, 보복하고 싶어 하는 것은 나면서부터 타고나온 사랑으로 말미암고, 자체 안에서 이 악을 일단 굳히고 그렇게 하여도 좋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그는 이들을 사랑하는 기쁨으로 하게 되고, 그는 마치 이성과 일치해서 그것들을 거침없이 생각하며 사랑하면, 시민법에 저촉되지만 아니하면 그대로 말하고 행하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주의 신성한 섭리에서 비롯된다. 그에게 자유 또는 자유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천성이 이 같은 자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와 세상을 사랑하는 기쁨으로부터 자체 안에서 이것을 추리 판단하여 일단 굳힌 사람은 다 이 안에 있는 것이다.

[5] 합리적 자유는 명예와 이득을 얻기 위한 명성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이 사랑의 기쁨은 겉으로는 도덕적 사람으로 보이는 데 있다. 또 사람은 이러한 명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속이지도, 간음하지도 않으며, 보복하거나 모독하지도 않는다. 또 그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성과 일치한 자유에서 진지하고 공정하며, 절개 있고, 또 우정으로 행한다. 또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행실을 고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합리성이 자연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동시에 영적인 것이 못되면 이와 같은 자유는 외적 자유에 지나지 아니하며 내적 자유가 되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것을 조금이라도 내적으로 사랑하지 아니하고,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외적으로만 사랑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행하는 선한 행위는 자체에 있어서 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이러한 행위를 일반의 복리를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주장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그의 명예나 이득을 사랑하는 데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자유는 일반의 복리를 사랑하는 데서 나온 것도 아니요, 그의 이성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의 사랑을 뽐내고 시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합리적 자유는 보다 내적인 자연적 자유인 것이다. 이 자유도 주의 신성한 섭리에 의해서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남겨두시는 것이다.

[6] 영적 자유는 영생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악을 죄로 알고 그래서 뜻하지 아니하는 동시에 주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면 어떠한 사람도 이 사랑과 그 기쁨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람이 이렇게 하면 그는 그 자유 안에 있는 것이다. 악은 죄이기 때문에 뜻하지 아니하고, 그래서 악을 행치 아니하는 사람의 능력은 그들의 내적 또는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에서 나온, 보다 내적 또는 보다 높은 자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는 처음에는 자유같이 보이지도 않으나 사실은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렇게도 보이고, 그때 사람은 선하고 참된 것을 생각하고 뜻하며, 말하고 또 행하는 데 있어서 이성 자체와 일치한 자유로부터 행하게 된다. 이 자유는 자연적 자유가 적어지며 종속하는 정도만큼 더해가고, 합리적 자유와 합하여 그것을 깨끗케 한다.

[7] 인생은 영원한 것이다. 시간상 일시적인 기쁨과 생의 축복은 영원한 생명의 끝없는 기쁨과 축복에 비하면 아침 안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누구나 이 자유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사람은 이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 합리성과 자유가 있기 때문이요, 이 두 기능을 내리신 주께서 끊임없이 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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