Из произведений Сведенборга

 

참된 기독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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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천국과 새 교회의 신앙

(The Faith of the New Heaven and the New Church in Both Universal and Specific Forms)

신앙이 보편적으로나 특수적인 형태로 서두에 쓰이는 것은 신앙이 어떤 일들 앞에 놓인 얼굴과 같고, 입구를 통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그 안에 충분한 것들이 내포된 요약집과 같기 때문이다. 새 천국과 새 교회의 신앙이라고 말한 것은 천사들이 있는 천국과 사람들이 있는 교회는 사람 안에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앙의 진리들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내면의 세계에서는 천국의 천사와 같으며, 사후 천국에 올 때는 사랑과 신앙의 결합된 상태에 따라 행복을 즐기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늘날에 설립하신 새 천국 안에는 이러한 신앙이 얼굴이고, 문이며, 요약집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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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독교 #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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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Ⅳ. 주님은 온전히 성만찬 안에 계시며, 그래서 주님의 온전한 구속이 성만찬 안에 있다.

주님은 성화하신 인성과 그로부터 인성이 나왔던 신성으로써 성만찬에 온전히 임재하신다는 것은 주님 자신이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들로 분명하다.

예수께서 떡을 드시고, 그것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몸이다. 그리고 잔을 들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 피다." (마태복음 26:26-28; 마가복음 14:22-24; 누가복음 22:17-20)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주는 떡은 내 살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안에 거한다." (요한복음 6:48, 51, 56, 58)

이들 말씀에 의해서 주님께서 인성을 성화하심으로 성찬에 임재 하신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주님은 그로부터 인성이 있었던 신성으로서도 전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주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기 때문에 명백하다 (요한복음 6:51). 주님은 신성과 함께 천국으로부터 강림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증거하셨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 암아 지은바 되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요한복음 1:1, 3, 14)

"그와 아버지는 하나다" (요한복음 10:30)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들은 주님의 것이다." (요한복음 3:35; 16:15)

"주님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주님 안에 계신다." (요한복음 14:10-11)등등

더구나 영혼이 몸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같이, 주님의 신성은 주님의 인성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선 주님의 인성으로 성찬 안에 전적으로 임재 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본성인 신성 역시 거기 임재한다는 것을 추론하게 한다. 자, 주님의 살이 주님의 사랑의 신성한 선을 상징하고, 주님의 피가 주님의 지혜의 신성한 진리를 상징하는 고로, 주님께서는 신성과 성화되신 인성으로 성만찬 안에서 임재하시고, 그 결과로써 성만찬이 영적인 식사 (spiritual eating)라는 것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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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독교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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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Ⅲ. 따라서 종교와 건전한 이성을 갖고 있는 전 세계 민족들 중에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모르는 민족은 없는 것.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성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속으로 흐르는 유입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은 한 분임을 깨닫는 내적 직관이 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연을 하나님으로 인식하며, 한 분 이상의 신들을 믿고, 형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 있음은 그들의 이성과 이해성의 내면들이 세속적이고 육적인 것들로 막혀있기 때문이고, 이로써 하나님에 관한 초기 관념과 어릴 때의 관념을 지워 버렸고, 종교성을 가슴에서 등 뒤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한 분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아래와 같이 신앙에 속한 그들의 전반적인 고백으로 나타나 있다.

‘가톨릭 신앙은 이것이니, 우리는 삼일성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해야하며, 삼일성은 유일성 안에 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세 가지 신적 인격들이 있으나, 세 가지 신들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며, 아버지의 인격과 아들의 인격과 성령의 인격이 있으나, 그들의 신성은 하나이며, 그분들의 영광은 동등하며, 그분들의 왕권은 영원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다양성에 따라, 하나님과 주님이 각각의 인격체로 계심을 고백하도록 강요하지만 세 분 하나님들이나 세 분 주님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톨릭교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한 기독교의 신앙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삼일성과 유일성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적 삼위일체에 관한 단원에서 보여질 것이다.

종교가 있고 건전한 이성을 갖고 있는 이 세상의 다른 민족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각 국에도 마호메트 교인들과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 특히 오늘날의 유대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들이 한 분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다. 황금기시대의 대부분의 고대인들도 여호와라 부르는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다음 시대인 고대인들도 그들의 이해성의 높은 면들이 열려있었다. 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여시고 한 분 하나님의 예배를 회복시키도록 야곱의 후손 중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들 종교의 계명을 가까이 두시었다.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지어다." (출애굽기 20:3)

그들 앞에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시게 하신 여호와는 그로부터 우주 안에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하시는 최고의 하나님으로 요부 (Jove)로 인식했는데, 이는 아마도 여호와 (Jehovah)로부터 불러진 듯싶다. 그리고 그들 성전을 꾸미고 있는 많은 것들에게 신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의 현인들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은 이들이 신들이 아님을 고백했고, 한 분 하나님의 여러 가지 특성과 속성과 특질들이 그들 각자 속에 신성이 있기 때문에 신들로 불리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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