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 Swedenborgovih djela

 

참된 기독교 #1

Proučite ovaj odlomak

  
/ 853  
  

1. 새 천국과 새 교회의 신앙

(The Faith of the New Heaven and the New Church in Both Universal and Specific Forms)

신앙이 보편적으로나 특수적인 형태로 서두에 쓰이는 것은 신앙이 어떤 일들 앞에 놓인 얼굴과 같고, 입구를 통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그 안에 충분한 것들이 내포된 요약집과 같기 때문이다. 새 천국과 새 교회의 신앙이라고 말한 것은 천사들이 있는 천국과 사람들이 있는 교회는 사람 안에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앙의 진리들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내면의 세계에서는 천국의 천사와 같으며, 사후 천국에 올 때는 사랑과 신앙의 결합된 상태에 따라 행복을 즐기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늘날에 설립하신 새 천국 안에는 이러한 신앙이 얼굴이고, 문이며, 요약집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853  
  

Iz Swedenborgovih djela

 

참된 기독교 #716

Proučite ovaj odlomak

  
/ 853  
  

716. Ⅳ. 주님은 온전히 성만찬 안에 계시며, 그래서 주님의 온전한 구속이 성만찬 안에 있다.

주님은 성화하신 인성과 그로부터 인성이 나왔던 신성으로써 성만찬에 온전히 임재하신다는 것은 주님 자신이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것들로 분명하다.

예수께서 떡을 드시고, 그것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몸이다. 그리고 잔을 들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 피다." (마태복음 26:26-28; 마가복음 14:22-24; 누가복음 22:17-20)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주는 떡은 내 살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안에 거한다." (요한복음 6:48, 51, 56, 58)

이들 말씀에 의해서 주님께서 인성을 성화하심으로 성찬에 임재 하신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주님은 그로부터 인성이 있었던 신성으로서도 전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주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기 때문에 명백하다 (요한복음 6:51). 주님은 신성과 함께 천국으로부터 강림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증거하셨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 암아 지은바 되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요한복음 1:1, 3, 14)

"그와 아버지는 하나다" (요한복음 10:30)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들은 주님의 것이다." (요한복음 3:35; 16:15)

"주님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주님 안에 계신다." (요한복음 14:10-11)등등

더구나 영혼이 몸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같이, 주님의 신성은 주님의 인성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선 주님의 인성으로 성찬 안에 전적으로 임재 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본성인 신성 역시 거기 임재한다는 것을 추론하게 한다. 자, 주님의 살이 주님의 사랑의 신성한 선을 상징하고, 주님의 피가 주님의 지혜의 신성한 진리를 상징하는 고로, 주님께서는 신성과 성화되신 인성으로 성만찬 안에서 임재하시고, 그 결과로써 성만찬이 영적인 식사 (spiritual eating)라는 것이 명백하다.

  
/ 853  
  

Iz Swedenborgovih djela

 

참된 기독교 #475

Proučite ovaj odlomak

  
/ 853  
  

475. Ⅲ. 사람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으며 자유의지로는 영적 균형 (均衡•equilibrium) 속에 있다.

자유의지와 그 특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원을 알 필요가 있다. 그 기원을 앎으로써 그 존재뿐 아니라, 그 특성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의 기원은 사람의 마음이 주님에 의하여 보전되고 있는 영계 안에 있다. 그 사람의 미음이 사후에 사는 그의 영이며, 사람의 영은 자연계에서 한 수단으로서 물질적인 몸으로 감싸 있지만, 동시에 자연계의 사람들이 교류하듯이 영계의 영들과 항상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영계의 영들과 관계하고 있음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영계의 영들과 교류하는 사람도 역시 육신을 입고 있을 때와 같이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적인 사람은 영들의 사고와 언어를 이해하지도 지각하지도 못하며, 영들 또한 자연적 사람의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서로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이 영계에 갔을 때는 그들과 함께 영적 사고와 언어를 가지게 되는데, 그 때 그의 마음은 내적으로는 영적이나 외적으로는 자연적이기 때문이며, 사람은 외적인 면으로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적인 면으로는 영들과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에 의해서 사람은 지각하고 분석적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소통이 없이는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을 정도로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고, 만약 영인들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면 즉시 죽어 버린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으며, 그것으로 영적 균형 속에 있고, 그로부터 자유의지가 있는가를 몇 마디로 설명하려 한다.

영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국은 머리 위에 그리고 지옥은 발아래 있다. 그러나 지옥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지구 중심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적 근원에 속한 영계의 땅 아래에 있다. 이 땅들은 영적 근원으로 있으므로 공간 (空間•spatial) 안에 있지 않고, 공간의 외모 (appearance of extension) 속에 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는 거기에 있는 자들에겐 완전한 세계인듯 보이는 큰 간격이 있다. 이 중간 영역 (interspace) 안으로 지옥으로부터는 모든 악이 내 뿜어지고, 또 천국으로부터는 모든 선이 흘러들어온다. 아브라함이 지옥에 있는 부자에게 말한 것은 이 큰 영역이 있음을 말한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6:26)

이 영역의 중간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의지 안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의 영으로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영역은 매우 광대해서 커다란 지구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영들의 세계 (靈世界•the world of spirits)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은 사후에 먼저 이곳에 들어가서, 천국 또는 지옥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은 영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서 이 세상에서 살던 것과 같이 영인들 중에서 살며, 로마 가톨릭이 잘못 소개한 연옥 (煉獄•purgatory)은 거기에 없다. 그러나 영계에 관해서는 1758년 런던에서 출판한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421-535항 참조)에 다루었으니 그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