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144

Por Emanuel Sweden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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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1] 또 어떠한 사람도 맹목적인 이해성으로 다시 날 수 없다. 이 사람들도 진리를 모르며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해성은 진리를 가르쳐야 하며 의지는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해성이 가르친 것을 의지가 실천에 옮기면 그 생활은 진리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성이 어두우면 의지도 막히고, 이성과 일치한 자유로 의지는 이해성 곧 거짓 안에서 굳혀진 악만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해성은 몰라서도 눈 어두워지지만, 맹목적 신앙과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에 의해서도 눈 어두워진다. 진리가 이해성을 여는 만큼 거짓은 가로막기 때문이다. 거짓은 이해성을 위로 닫고 아래로 열며, 아래로만 열린 이해성은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오직 이해성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특히 거짓을 굳힐 수 있을 따름이다. 이해성은 또 악한 정욕으로도 눈 어두워진다. 의지가 이 정욕 안에 있으면 의지는 이해성으로 하여금 선동하여 정욕을 굳히게 한다. 또 악의 정욕이 일단 굳혀지면 의지는 선을 지향하는 애정 안에 있을 수 없고 진리를 보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다시 나지 못한다.

[2] 보기를 들면 어떠한 사람이 간음의 정욕 안에 있으면 그 사랑의 즐거움 안에 있는 의지는 이해성을 움직여 이를 굳히게 하고, "무엇이 간음이랴, 그 안에 어떠한 악이 있다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는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간음해도 결혼에서와 다름없이 자녀가 생기지 않는가, 아무런 해도 없는데 아낙네는 한 사람 이상 받아들이지 못한다니 될 말인가, 영적인 것이 여기에 관여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하여 의지의 창녀가 된 이해성은 그때에 이렇게 생각하고, 의지와 더불어 방탕한 삶을 살게 한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은 영적, 천적, 사랑 자체이며, 주님과 교회의 사랑의 형상이며, 그 사랑으로부터 나왔고, 그리하여 자체에 있어 거룩하고, 절개 자체이며, 순결하고 순진무결한 것과, 부부의 사랑은 사람으로 모양에 있어서도 사람이 되게 하며, 이는 서로를 극진히 서로 사랑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다듬어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음은 이렇게 다듬어진 형상을 깨뜨리고 그것과 더불어 주의 형상을 깨며, 더욱 가증한 것은 간음을 일삼는 사람은 그의 (난잡한) 생활을 그의 아내 안에 있는 (절도 있는) 남편의 생활과 뒤섞는 것과 이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씨 안에 있기 때문인 것들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게 된다.

[3] 이것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옥을 간음이라 하고, 반대로 천국은 결혼이라 한다. 더욱이 간음의 사람은 제일 낮은 지옥과 오가지만 참다운 부부의 사랑은 가장 내적 천국과 오간다. 또 남녀 간의 성기관은 가장 내적 천국의 사회에 상응한다. 이상은 의지가 악의 정욕 안에 있으면 이해성을 얼마나 눈 어둡게 하는 것과, 어떠한 사람도 이해성이 눈 어두운 상태에서는 다시 날 수 없는 것을 밝히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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