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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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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3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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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에 관한 교리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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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4장. 주님은 십자가의 수난으로 죄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죄를 지고 가셨다.

교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십자가의 수난으로 죄를 제거하시고 아버지께 속죄하셨으며 그렇게 구속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하여 그것을 견디시고 바다 즉 지옥의 심연 속으로 던져 넣으셨다고 믿는다. 그들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한 다음의 말 속에서자신의 신념을 굳힌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이사야서에, 주님의 말씀으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같도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 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 53:4-12)

구절들은 모두 주님의 시험과 수난을 말한 것이다. 주님이 죄질병을 제거하셨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의 죄악을 당신이 감당하셨다는 것은 주님이 슬픔과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2] 그러므로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죄를 제거하셨다는 의미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은 쓰라린 시험을 견디신 것을 뜻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말씀에 대해 그런 것처럼 주님을 함부로 대하여 고통 받으신 것을 뜻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주님은 말씀이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의 교회가 완전히 황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말씀 속에 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말씀의 모든 것을 왜곡시켜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받으신 모든 고난의 의미이다. 선지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고난을 당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말씀으로서 주님을 표상했고 거기서 파생하여 교회로서 주님을 표상했으며 주님은 곧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3] 주님이 선지자이신 것은 다음 구절들에서 분명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3:57; 마가복음 6:4; 누가복음 4:24)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33)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태복음 21:11; 요한복음 7:40)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누가복음 7:16)

네 형제 중에서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명기 18:15-19)

선지자들이 비슷한 대우를 받은 것은 다음으로 분명하다.

[4]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기 위하여 선지자 이사야에게 명하시길,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이사야 20:2-3)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게 하기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명하시길,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고,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셨다, 여러 날 후에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예레미아 13:1-7)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기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명하시길,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초상집에 들어가지 말라가서 통곡하지 말며 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지 말라(예레미아 16:2, 5, 8)

[5]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도록 에스겔 선지자에게 명하시길,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나누어 두라,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에스겔 5:1-4)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도록 에스겔 선지자에게 명하시길,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너는 낮에 그네 포로의 행장을 밖에 내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리라, 이것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 하셨다 하고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가리라(에스겔 12:3-7, 11)

[6] 그가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게 하기 위하여 선지자 호세아에게 명하기를,

너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 그가 그녀를 취하여 세 아들을 낳으니 그중 하나는 이스라엘이라 하고 그 둘째는 다시는 긍휼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라 하고 셋째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할 것임이라(호세아 1:2-9)

그에게 명하시길,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별 다섯 개로 사서(호세아 3:1-2)

[7] 그가 교회의 상태를 표상하도록 선지자 에스겔에게 명하시길,

너는 흙벽돌을 집어다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라, 성벽과 대를 쌓고 또 석쇠를 가져다가 너와 그 도시 사이에 두고, 너는 왼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워라 곧 삼백 구십일 이니라 너는 또 오른쪽으로 사십일을 누워라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떡을 만들어 달아서 먹으라 너는 인분을 섞어 보리떡을 만들찌니라 그러나 그리마옵소서 기도 하였으므로 쇠똥을 심어 만들게 하시니라(에스겔 4:1-15)

이밖에 선지자들은 다른 것들도 표상하였다.

예를들면 시드기야는,

그 자신을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었고(열왕기상 22:11)

또 다른 선지자는,

상하도록 쳐서 재로 눈을 가리운 것으로(열왕기상 20:35-38)

[8]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은 궁극의 의미로서 말씀, 즉 글자의 뜻으로서 말씀을 표상했다.

그것은 “머리털로 짠 옷”(스가랴 13:4)이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열왕기하 1:8)

세례요한도 같은 식으로,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태복음 3:4)

이상으로 선지자들은 교회의 상태 뿐 아니라 말씀도 표상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존재하며 말씀을 삶과 신앙 안에 받아들이는데 따라 존재하므로 교회를 표상하는 사람은 말씀도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신, 구약 어느 곳에 기록되어 있든지 말씀으로부터 존재하는 교회의 교리를 뜻하며 또 가장 큰 선지자로서 주님은 교회 자체, 그리고 말씀 자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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