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는 해로운 방법

Napsal(a) Jeffrey Smith (strojově přeloženo do 한국어)
  
Do not judge, written with Scrabble letters.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도록 판단하지 말라." 이 구절을 사용하면 기분이 좋고 의롭게 느껴질 수 있죠? 그리고 "너희"라고 말해야 더욱 권위 있게 들립니다. 판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장 중 하나이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비판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 않나요?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지적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판단을 받을 때 자신이 사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멸시 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날 판단할 권리가 있어요?"와 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권리가 있을까요? 이웃이 뭔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웃이 끔찍한 말을 하면 우리가 들은 것을 근거로 그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판단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판단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의 기름 부음 이야기에서 주님은 이새의 첫 아들이 좋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무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그를 거절했으니 그의 외모나 키 높이를 보지 마십시오. 주님은 사람이 보는 것 같이 보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거니와 주님은 마음을 보시느니라"(1 사무엘 16:7)

주님의 말씀에서 키는 선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에서 키에 대한 언급과 관련하여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겉모습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키 또는 선은 단순히 우리의 눈과 귀로 관찰하는 선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것이 우리가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판단한다고 해도 여전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결국 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 즉 사람의 마음속 의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것이 내 마음의 의도 입니다."라고 말해도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판단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다른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음 내용을 살펴봅시다. 마태 복음 7:1-3 "판단하지 말라."로 시작하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너희는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사용하는 그 잣대로 너희도 잣대를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아니하느냐? 또는 어떻게 형에게 '내가 네 눈에서 티를 빼 주겠다'고 말하면서 네 눈에는 들보가 있느냐?"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판단한다면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을 연상시키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남을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를 판단하지 마소서"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구절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배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눈에 들보가 있어 판단에 필요한 예리한 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우리가 하는 좋은 일의 상징입니다. 눈은 참된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눈 속의 나무 조각은 외부의 선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이해를 방해하는 상황, 즉 우리의 기본적인 일상적인 선한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가 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웃보다 더 큰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이 그 이웃을 판단하는 것이 독선적으로 정당하다고 느끼는 실제 사례를 얼마든지 상상해 보세요. "실제 사례"라고 말한 이유는 평균적인 사람, 심지어 평균 이상의 사람들도 매일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우리의 영어 단어 판단은 여기서 그리스어 정의를 실제로 수행하지 않습니다. 영어에서 판단한다는 단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분별하거나 구별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어에는 단순히 비난하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판단하지 말라"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면 이웃을 정죄하는 방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이 경우의 돌은 도움이 아니라 파괴하려는 진정한 생각입니다. 주님의 요점은 우리는 진리를 정죄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자격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심판은 주님께 맡겨져 있지 않습니까? 그분만이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신가요? 누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그분께 달려 있지 않나요? 그분이 어떻게 말씀하실지 봅시다.

누가복음 - 군중 중 누군가가 예수님께 "선생님, 제 동생에게 유산을 저와 나누라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에 대한 재판관이나 중재자로 만들었느냐?" (누가 복음 12:13-14)

여기서 주님은 자신이 심판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글쎄요, 아마도 그분은 단지 자연적인 것을 의미하실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읽어봅시다. 이번에는 새로운 기독교 가르침에서 읽어 봅시다.

성서 교리에서 -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만이 심판대에 앉으실 것이며,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흑백으로. 주님께서 심판대에 앉으실 것입니다. 아, 잠깐...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그분의 열두 제자는 말씀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소유 한 모든 진리와 재물에 관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교리에서 이 진리가 모든 사람을 심판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성경에 관한 새 예루살렘 교리 51)

아, 잠깐만요. 알겠어 진실이 모든 사람을 심판할 거라는 뜻이군요.

흠... 복음서를 조금 더 읽어보죠:

요한복음에서: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으면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나를 거부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심판자가 있습니다. 내가 한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 할 것입니다." (요한 복음 12:46-48)

네, 주님은 복음서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우리는 새 교회의 가르침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판자"가 주님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작동합니까? 주님은 어떻게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진리가 심판하시나요?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에 보면 주님은 아무도 지옥에 던지지 않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 영들 사이에 도착할 때에도 자신을 던집니다. (천국과 지옥 548)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마음과 신념을 진리에 맞추고 진리가 마음에 들면 천국을 선택합니다. 진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진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만든 지옥으로 도망칩니다. 악한 사람들은 천국의 빛이 자신의 마음을 비추고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보여주기 때문에 견딜 수 없습니다. 진리의 빛을 멀리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가장 위대하다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기 위해 판단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정죄하는 방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선, 주님은 누구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며 우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네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도 보지 못하면서 어찌 네 형제에게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위선적이고 독선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박힌 들보는 우리의 선행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여호와는 사람이 보는 것 같이 보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의도나 마음속에 있는 욕망에 대해 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판단하지 말아야 할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정죄하는 방식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독선적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위선적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도나 영적 성품을 판단하지 마세요.

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못된 행동을 멈추고 나서야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법을 배워라"(이사야 1:16-17).

먼저 악을 피한 다음 선을 행하세요. 판단하는 데에는 해로운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이를 중단해야 합니다. 판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판단하는 자신과 상대방에게 해롭습니다.

그리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올바르게 판단하는 방법에 대한 도움말을 참조하세요.

(2021년 4월, 제프리 스미스의 설교에서 발췌)